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기도를 하시면서 앞으로 전개될 당신의 전도활동에 대한 실제적인 구상을 하십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대업은 아무렇게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셨지만 그러나 깊은 사색을 통해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실 것인지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첫 작업으로써 제자들을 찾으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당시만 해도 세례자 요한의 권위와 명성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메시아인 줄 알았습니다. 요한이 보여주는 초인적인 극기생활, 그리고 썩은 지도자들에 대한 사자와 같은 용감한 외침은 왕까지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요한을 성서에서 오시기로 ‘약속된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자기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사람들 앞에 자기를 부정하고 오히려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그쪽으로 따라가도록 권유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하고.
여기서 어린 양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그 어린 양을 말하며 또한 이사야서에서 네 번이나 계속해서 나오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을 말하고 또한 그것은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는 메시아의 정체를 말합니다. 따라서 요한이 외친 어린 양은 바로 메시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의 제자들이 그 깊은 내용을 깨닫고는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다시 말해 돈이냐 권력이냐 아니면 명예냐 구원이냐 라고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이때 안드레아와 또 다른 사람은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그분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선 그가 묵고 계시는 곳을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세상에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와서 보지 않고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또 실제로 보면 ‘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밥 먹여 주냐’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로 와서 보면 예수님의 정체는 겨자씨보다 작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주 보잘 것이 없습니다. 썩은 누룩처럼 가치 없게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보고 믿으면 세상에 그보다 더 큰 나무가 없으며 세상에 그보다 더 풍요로운 것도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하찮지만 그분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세상은 대단히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드레아는 자기 형을 찾아가 한마디로 단정을 했습니다.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쳤던 안드레아의 믿음은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대단히 모순된 말 같지만 세례 받고 수십 년 동안 믿음의 생활을 해왔으면서도 메시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믿어도 변화가 없으며 회개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들도 없습니다. 자기는 잘 믿고 있다고 하는데 메시아는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1사무 3,3-19 참조)에 보면 어린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자꾸 착각합니다. 이쪽에서 부르시는데 저쪽으로 가서 대답합니다. 그러니까 대화가 안 됩니다. 나중에 스승의 충고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우리도 그래서 주님의 부르심을 분명하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옳게 알아들어야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떠오르는 새해와 함께 믿음의 장정도 새롭게 출발을 하게 됩니다. 올해는 더 건강하고 더 잘 벌어서 더 잘 살아야 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믿음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리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쪽에서 부르시는데 자꾸만 저쪽으로 가서 대답하며 땀을 흘린다면 그는 1년을 또 바보처럼 헛되게 보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셨으며 속죄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그렇게 소개할 때 그들은 예수님을 새 스승으로 알고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라는 말과 그분의 정체를 보고는 메시아라고 단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주님은 우리도 똑같이 부르십니다. 따라서 “와서 보라”시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으며 성서 안으로, 교회 안으로 그리고 사랑 안으로 뚫고 나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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