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와 철학의 영향
독일의 인문주의는 대부분의 요소가 15세기 중엽 이탈리아 인문주의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경향이나 방법의 대부분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 인문주의와 거의 비슷하였다. 물론 프랑스나 영국의 인문주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지만, 역시 이탈리아로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인문주의가 독일에 소개될 때, 처음에는 스콜라주의로부터, 또는 이교주의에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기존 세력으로부터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 운동을 지지하는 단체나 대학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초기에는 고전적인 시인들을 모방하기 위하여 라틴어 시에 관심을 가지고 시와 수사학 연구를 활발히 하였으나 이렇다 할 성공적인 시인을 배출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희랍의 고전이나 성서와 이스라엘의 고전(예: 탈무드)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연구하였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독일의 인문주의는 민족주의적 문화운동의 성격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게르만족 역사에 관한 폭 넓은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금석문학과 고고학이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민족주의적인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영향을 끼치면서 게르만족의 고대와 중세 역사에 관한 저서와 기타 자료들을 수집하여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독일의 고대나 중세 역사와 그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하여 쓴 「따치뚜스의 게르마니아」란 책이 출간되었다.
또 민족주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을 담당한「아르미니우스(Arminius)의 대화」라는 작품이 있는데 종교 개혁이 고조된 1520년과 1529년에 출판되었다. 이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와 띠베리우스(Tiberius) 황제시대에 로마제국에서 반항하였던 민족적인 영웅을 부각시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은 투쟁의 한 상징으로 제시되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와의 투쟁을 독일의 민족적인 거사로까지 암시하였다. 따라서 종교적인 차원에서도 로마 교회와의 투쟁은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 여겼다.
위와 같은 분위기에서 마르틴 루터에게 영향을 끼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세기에 시작되어 16세기 내내 지속된 라틴 아베로이즈주의(Latin Averroёs)인데 이 사상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섭리, 창조, 인간의 행복과 자유에 대하여 신앙의 가르침과 대조적으로 설명하였다.
역시 13세기에 시도된 사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계시 진리를 종합하려는 경향이 루터의 시대에도 만연했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이 하느님에 관해 계시된 진리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인간이 포착할 수 없는 계시의 하느님, 무한하신 하느님을 한계가 분명한 감각적인 범주 안에 가두어 놓거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체계에 한정 지어 버렸다. 즉 절대자이신 하느님 그 자체로서보다는 형이상학적인 유로서 하느님을 해석하려고 하였다. 역시 전통적인 신앙과 배치되었다.
또 루터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은 유명론으로 실재하는 것은 개체적인 물질뿐이며 보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명사론적 인식론에 의거하여 일체를 극단적인 회의론으로 몰고 갔다. 이로 인해 초감각적이고 초논리적인 신학적인 요소까지도 변증법적인 방법론에 입각하여 경험적이고 실증적으로 해석하려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재촉하였다. 이성의 검증을 받지 앓는 대상은 계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영혼의 존재와 영성, 불멸성도 인정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극단적인 이론은 또 다른 극단의 사상을 잉태하게 되는데, 가끔 이 두 극단은 하나로 착각될 수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성으로써는 신의 대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신앙주의(Fideismus Radicalis)의 경향으로 흘러갔다. 이제는 이성의 검증이나 외적인 절차 없이 자기 의지로써 느끼는 신앙을 기준으로 삼는 주의설(Voluntarismus)적인 신앙관의 경향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철학적인 사상은 후에 루터 사상에 있어서 다만 ‘신앙으로’(Sola Fide)가 기준으로 설정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절대적인 주님’으로 등장하여 동그란 사각형도 그릴 수 있고 선과 악의 한계도 없어 성인도 지옥에 보내실 수 있고, 반대로 악인도 천국에 보낼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체로 의인이 될 수 없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보아 주심으로 의인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한다. 결국 이러한 인간의 행위는 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공로도, 인간이 성인이 되는 데 별 구실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상은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 유일주의나 ‘다만 은총으로’(Sola Gratia)라는 개념으로 드러난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당시 교회의 타락에 분개하여 우연히 일어난 단순한 사건만은 아니다.
우연히 일어난 단순한 사건은 일시적으로 진행되다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은 그의 철학적, 신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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