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추모공원 전경.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보삼로 319-34. 산자락을 따라 넓게 펼쳐진 묘지들 사이로 꽃과 풀, 나무들이 가지런히 꾸며져 있다. 묘지라기보다는 공원이라는 느낌이다. 이름도 안성추모공원. 교구가 죽은 이들만이 아니라 유족들과 묘지 참배객들을 배려해 마련한 공간이다.
성당까지 가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어쩐지 묘지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거룩한 장소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교회가 ‘거룩한 땅’이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가 순례하는 성지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교회는 죽은 신자들이 축복받은 거룩한 땅에 묻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이나 건물에 대해서도 축복을 하지만, 묘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인 축복식이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이라면 교회 묘지는 하느님께 봉헌해 성스럽게 하는 준성사인 ‘축성’에 해당하는 장소다. 교회법(1240~1243조)에 따르면 교회가 축성하는 장소는 성당, 경당, 성지(순례지), 제대, 교회 묘지 등이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교회는 묘지의 거룩한 성격을 보호하고 촉진할 것을 가르친다.
서구권의 교회를 가면 성당 바로 곁에 묘지가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본당 신자들이 죽으면 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본당들도 설립된 지 오랜 본당들은 본당 차원에서 묘지를 마련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묘지가 산에 위치해 삶의 공간과 분리된 장소로 여겨지고, 묘지가 혐오시설로 치부되는 등 우리나라 정서 안에서 삶의 공간 안에 있는 본당들이 묘지를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교세가 빠르게 증가하고 본당 신설이 많아지면서 많은 본당들이 묘지를 마련할 여력도 없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교구는 신자들이 거룩한 땅에 묻힐 수 있도록 교구 차원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적극 인식, 1980년대부터 교구 차원의 묘지 조성을 준비해왔다. 마침내 1986년 7월, 공원묘원 기공식을 거행했다. 또 10월에는 묘지 관리위원을 임명하고, 축성미사를 봉헌했다.
오르는 길목 곳곳에 십자가와 성모상이 보였다. 평일이었지만 가족이나 지인들의 묘소를 찾아 방문한 이들의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묵주를 들고 있는 신자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성당을 향해 오르는 길이 묘지를 거닐고 있다기보다도 어쩐지 성지를 순례하는 기분이 든다. 묘지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문화의 모습이지만, 그 마음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는 신자들의 믿음이 함께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