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책이 서가에 꽂혀 있어도 책을 찾는 사람이 없다면 금방 색이 바래고 먼지가 쌓이게 마련이다. 독서운동도 마찬가지.
전국 방방곡곡 남녀노소를 불문한 '독서광'들의 동참은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가 3년간 성공적으로 전개되는 큰 힘이었다.
'일 년에 서른 세권을 어떻게 읽어요'라는 2005년 1월의 반문(反問)은 2007년 12월 '100권도 읽을 수 있네요'라는 응답(應答)으로 바뀌었다. 3년간 한 달도 빠짐없이 100권의 책을 주문한 참가자가 70여 명, 2006년부터 2년간 매달 책을 받은 참가자도 40여 명에 달한다.
독서운동 3년을 함께 걸어온 이들의 이야기다.
■ 수원교구 용문본당 김인수씨
"책 읽는 삶, 더 큰 행복 가져다 줘"
20년간 읽은 1000권 책 모두 기증
"때론 신심서적이 성경보다 와닿아"
"막상 마지막 책을 받고 보니 섭섭했어요."
응접실 탁자에는 12월 선정도서 '행복한 기도'가 놓여 있다. 불과 사나흘 전에 도착했을 텐데 북마크는 이미 책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김인수(안드레아·75·수원교구 용문본당)씨는 3년간 선정도서 모두를 읽었다는 보람보다는 독서운동이 12월로 마무리되는 게 아쉽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을 읽은 뒤로 책에 빠졌습니다. 정말 어렵게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으며 책이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 양식인지 깨달았죠. 그 뒤로 출퇴근 버스에서도 항상 책을 읽었고 은퇴 후에도 독서는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20년간 읽은 책이 1000여 권. 이 책들은 지난 2004년 도시 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이사 오며 수원교구의 한 본당에 모두 기증했다. 다른 이들과 책에 담긴 보물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이런 김씨에게 2005년 1월 접한 독서운동은 기쁜 소식이었다.
"낮에는 텃밭을 가꾸고 아침, 저녁으로는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나이 들면 눈이 어두워 책 읽기 힘들다고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제게 책을 볼 수 있는 밝은 눈도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을 이야기 해 달라 하자 '우동 한 그릇', '나무를 심은 사람', '문학의 숲을 거닐다', '대화' 등 책 제목 뿐 아니라 책 구절까지 술술 외워나간다. 김씨는 책을 읽으며 때때로 성경 말씀보다 더 진한 감동을 찾는다고 이야기한다.
"손주들에게도 책을 많이 읽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성공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성공이 진정 행복한 것이니까요."
독서운동은 끝났지만 책읽기는 계속된다.
"희망이 없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아내는 욕심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10년만 더 살며 한 해 50권씩 500권의 책을 읽고 싶어요. 11월까지 58권을 읽었으니 올해는 목표량을 채웠네요."
■ 대구 고산본당 이재용씨
"'은총의 삶' 깨닫게 해줬죠"
신심서적 계기로 '나눔' 동참
책 선물하며 복음전파 효과도
"매일 아침 눈을 떠 제게 은총의 삶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3년간 신심서적 33권 읽기 운동에 동참한 이재용(비오·대구 고산본당)씨는 100권의 신앙서적을 통해 매사에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고백한다.
평소 한 달에 5권 이상 책을 읽는 이씨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어 틈만나면 독서를 즐긴다. 하지만 3년 전부터 신심서적 읽기에 맛들이면서 요즘에는 막내 아들에게 "아빠 (책) 편식 좀 하지마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책 속에는 제가 몰랐던 지식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요. 특히 신심서적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했죠. 누구나 인생을 살며 겪는 크고 작은 걱정들을 가지고 있지만 신심서적을 읽으면 그 걱정거리들이 씻은듯 사라져요. 제 삶이 하느님께서 돌보시는 은총의 삶이라는걸 깨닫게 됩니다."
이씨는 100권의 신심서적 중 특히 '나가사키의 노래'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 등에 감명 받아 매달 소정의 후원금을 보내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나가사키의 노래'의 주인공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원폭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마저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죽는 그날까지 철저히 신앙을 지키고, 평화를 외치는 그의 삶은 너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또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에서 전쟁과 빈곤 속에 살아가는 아프리카인들이 절망 속에서도 작고 아름다운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찡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두 발로 성당에 갈 수 있고, 열 손가락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음에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어요."
이씨는 하느님의 자녀로 가장 기본 의무인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지키는데도 열심이다. 이 복음 전파의 노력에 신심서적도 톡톡히 한 몫을 차지했다.
이씨는 "신심서적을 읽다가 특별히 더 마음에 와 닿는 책이 있으면 몇 권 더 주문해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주님께로 인도하고 싶은 비신자들에게도 보냈다"면서 "매달 전례력에 맞는 신앙서적을 선정해 줘서 선물할 때도 더 의미있고 좋았다"고 말했다.
■ 서울 애화학교
"듣지 못 하는 아이들과도 소통"
교사·타종교인·비신자에 선물
학부모 대상 독서 모임 열기도
청각장애교육기관인 서울애화학교(교장 김정화 수녀,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는 독서운동이 시작된 2005년부터 교장 김정화 수녀와 교사들을 중심으로 독서운동에 참가해왔다.
김수녀는 사비를 털어 2005년 한 해 동안 많게는 여덟 세트까지 책을 받아 축일이나 생일을 맞은 교사들에게 선물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한 세트씩 구입해 교장실에 두고 책을 읽고 싶은 교사들이 언제나 찾아와 빌릴 수 있도록 했다. 또 개신교 신자나 종교가 없는 교사들을 위해 교육이나 환경 관련 도서를 따로 선정해 선물하는 등 책 읽는 학교를 만들어 가는 데 힘쓰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사 임동규(아오스딩)씨는 "신심서적 등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은 듣지 못하는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애화학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초·중·고등부 교실 한 쪽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아 학생들이 언제나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교육 독서모임'도 열고 있다. 학부모 대기실에 각종 양서를 비치해놓고 무인판매도 하고 있다.
김정화 수녀는 "독서운동이 신심서적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며 "신자 뿐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양서를 접할 수 있는 캠페인이 독서운동을 계기로 교회와 사회 안에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광주대교구 청계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회
"영성생활·기도에 큰 도움 됐죠"
책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우리들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광주대교구 청계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 김영숙(아녜스)씨는 "어떤 책이 읽을 만한 좋은 책인지 고르기 어려웠는데 영성생활과 기도에 도움이 되는 책을 선정해주시고 배달까지 해 준 독서운동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회는 2005년 1월부터 독서운동에 참가했다. 첫 해에는 초등부 교사 위주로 책을 읽다가 2006년부터는 중고등부 교사들도 동참했다.
매달 세 권의 책을 읽기가 버거워 포기한 교사들도 여럿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네 명의 교사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매달 셋째 주 주일에는 한 자리에 모여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나누고 자신이 읽었거나 새 책을 소개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작은 시골본당이어서 책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도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앞으로도 교계출판사나 교회 여러 기관·단체에서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좋은 책을 선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사진말 : 김인수씨는 앞으로 500권의 책을 더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사진말 : 이재용씨는 신심서적을 계기로 삶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