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93년 6월 29일 소말리아에 파병된 상록수 부대 강요식(안토니오) 대위가 소말리아 현지 상황과 성탄을 맞는 장병들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내왔다. 강요식 대위는 현재 2백52명의 부대원 중 장정훈 부대장(중령 안토니오)을 비롯 26명의 장병이 신자인 상록수 부대에서 구매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온종일 불어대는 남풍에 모래가 날리고 있다. 살갗을 태울 듯한 태양이 대지를 불태우고, 가난과 굶주림으로 찌들은 가엾은 주민들이 정처 없이 방황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소말리아, 신마저 저버리고 세계가 소외시켜 버린 듯한 느낌이다. 이 나라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척박한 소말리아’로 표현하면 옳을까?
궁지에 몰린 소말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UN군 평화 유지 활동이 92년부터 시작되었지만 부족 간의 이해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에서 그 해결점은 아직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UN군 일원으로 소말리아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군 상록수 부대는 93년 6월 29일 선발대에 이어 7월 30일 본대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상록수 부대는 공병부대로 이곳의 ‘황제도로’라 불리는 도로 보수 공사를 주임무로 하고 있으며 심정 굴착, 대민지원, 타국군 일반 공병지원 임무를 맡고 있다.
필자는 구매장교로서 월 2회 케냐 출장을 통해 신선한 야채 및 과일을 구매하고 메뉴 편성, UN 부식 청구 등 급식에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다.
부대 임무상 지금까지 소말리아 반군과의 총격적은 없었으며, 기간 도로를 보수한다는 점에서 인근 주민들의 신뢰 및 우의관계가 매우 돈독하다고 본다.
특히 부대 내에서 주 3회 운영하고 있는 ‘사랑의 학교’는 굶주림과 배움을 목 말라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철없이 수업 후 나누어주는 건빵에 최대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동요인 산토끼를 따라 부르며 천진난만해하는 어린이들의 표정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부대원 중에서 가톨릭 신자는 26명이며, 매주 주일 및 목요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부대는 이태리군과 같은 영내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행히 신부님이 계셔서 우리를 위해 미사를 집전하시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최근에 이태리 신부님의 교체가 있었다. 전임 프란체스코 신부님은 이태리어로 미사를 집전하시기 때문에 미사 중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후 미사 절차대로 순조롭게 진행했다.
새로 부임하신 알렉산더(중위 46세) 신부님은 성격이 쾌활하시고 영어를 잘하시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알렉산더 신부님은 오시자마자 미사 내용을 모두 한국어로 하시겠다고 의욕을 보이신다. “매일 30분씩 우리말 공부를 해서 성탄미사 때는 완벽히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신부님의 자신감에 찬 말씀이다.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마음은 성탄이 온 듯하며 아프리카에서의 성탄미사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이디어를 짜고 있다. “이태리에서 5피트 X-mas 트리를 가져올 예정이며, 주교님도 오실 예정이다”라고 신부님이 전한다.
눈이 없는 성탄절, 이곳의 기후는 최고로 더운 여름 날씨이다. 아프리카에서의 성탄미사는 우리 신자에게 매우 색다른 의미를 줄 것 같다. ‘열사의 사막에서 X-mas 캐럴을 부르면서…’ 이번 성탄미사에는 이태리 주교님이 오시고, 우리 예비신자 3명이 세례를 받을 예정으로 틈틈이 교리 공부 중에 있다.
신자간의 친교활동을 돈독히 하기 위해 격주제로 미사 후 축구 시합을 하고 수박 파티를 열며, 전원 미사 참석의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 있지만 우리 신자들은 외롭지 않다. 항상 주님이 곁에 계시고, 따뜻한 은총 속에서 주님 위해 기도하고, 모든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잘 극복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 형제를 이 땅에 버릴 수는 없다. 우리 상록수 부대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 그들을 돕는 길이며 항상 주님의 따뜻한 은총의 손길이 뻗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소말리아에 평화를 심으로 온 상록수 부대. 늘 푸름을 간직하는 마음으로 소말리아에 평화, 조국에 충성, 부대의 명예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고국의 품에 돌아가리라.
1993년 12월 성탄을 준비하며… 강요식(안토니오)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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