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에서 이포 방면으로 383번 국도를 타고 승용차로 20여분 달리면 전형적인 농촌 풍경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고향의 정취를 짙게 자아내는 고풍스런 옹기 터가 보인다.
황량한 겨울 들판이 감싸 안은 야산 언덕배기 한편에서 삭풍에 따라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치솟는 옹기 가마의 흰 연기들이 도심의 회색 시멘트 빛으로 물든 굳은 마음들에게 자연으로 되돌아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경기도 연주군 금사면 이포2리 산13번지, 7대째 조선 옹기를 고집스레 지키고 있는 ‘옹기장이’ 김일만(요아킴‧53)씨 일가의 삶의 터전이다.
◆신앙으로 업 대물림
듬성한 싸리담과 울타리 너머로 쌓여있는 투박한 옹기들의 모양새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의 질곡을 인내하면서도 미처 옹기 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할아버지가 구웠고, 그 윗대 할아버지들이 구웠던 조선 옹기를 완벽히 재현하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궂은일을 가업으로 물려주기를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는 우리 민족 정서와는 달리 험한 일이지만 조상들이 신앙의 힘으로 대물림한 옹기업을 당연지사요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들 일가는 왠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 같지가 않다.
옹기장이의 피를 받고 옹기장이와 부부 연을 맺고 한 평생을 옹기 가마 터에서 살아온 노모 서우술라씨(76)와 부인 신종애씨(안나‧51), 아들 성호 정호 창소 용호 4형제와 두 며느리, 쌍둥이 손자들 4대 12명의 대가족이 어울려 사는 김일만씨 가정은 분명 남다르다.
김씨 집안의 신앙의 뿌리와 항아리 역사는 한국 천주교 전래사와 맞먹는다. 천주교가 이 땅에 막 꽃 피기 시작한 조선 정조 말엽에 ‘예수 마리아’를 알게 된 김씨의 현조부가 동료 신자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경북 안동 땅으로 숨어들면서 옹기와 연을 맺게 됐다.
주마등같은 그 인고의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김씨의 안방에 모셔진 녹슬고 이끼 낀 십자가가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대부분의 옹기장이가 그렇듯 김씨 일가도 가난을 ‘업’으로 지고 살아왔다. “어디에 가면 흙이 좋고 옹기가 잘 팔린다”는 소문만 돌면 그리로 몰리는 것이 옹기장이의 속성이다. 그래서인지 김씨 일가도 전국에 떠돌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재래식 옹기만 고집
이러한 가난 중에도 옹기 터를 7대, 8대째 대물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굳게 믿고 있다. “옹기는 공동체의 예술”이라고 표현한 김씨는 “누구 하나라도 이 일이 싫다고 손을 놓아버리면 가족 모두가 옹기 일에 손을 떼야 한다”고 털어놨다. 도자기를 굽는 것과는 달리 워낙 거칠고 힘든 일이라 무엇 하나 손이 비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씨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신앙의 힘만이 12명의 대가족이 한 집에 살며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묶어두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김씨 일가의 왜골스러움은 옹기 굽는 일에 더욱 잘 배어 있다. 항아리를 보기 좋게 때깔 내는 ‘광명단’을 쓰지 않고 자체 개발한 천연 유약만 사용한 재래식 항아리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김씨 일가는 또한 흔하디흔한 기름 가마나 가스 가마를 쓰지 않고 재래식 장작 가마만을 고집한다. 장작으로 흙을 속속들이 구워 항아리에 자정력을 불어넣는다. 항아리의 첫째 조건은 뭐든 담아 둬도 냄새가 배거나 변질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외국에도 기술 전수
그래서인지 김씨 일가의 항아리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유명하다. 한국의 재래식 옹기를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오사카의 심수강씨와 같은 걸출의 도공이 김씨를 찾는가 하면 미국에서도 이들 집에 유학 오기가 일쑤이다. 얼마 전에는 김씨에게 재래식 옹기 기술을 배워 간 미국 LA의 한 도예가가 셋째 창호에게 미국에 와 옹기 가마를 지워줄 것을 요청해와 이들을 기쁘게 했다.
김씨 일가는 자신들이 장인으로 불리기보다 옹기장이로 불리길 원하는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다. 남들은 그들의 항아리를 높이 인정하지만 김씨 일가는 가마를 열 때마다 늘 부족함을 느끼곤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구워냈던 그 빛깔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넉넉지 못한 살림에 옹기장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자신의 일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어 더없이 행복한 김일만씨 일가. 매사에 여유 있는 모습과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 얼굴에서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떠나 고향에 안주하고픈 푸근한 인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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