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비참한 상태에 빠진 사람이 할 일은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절망에 빠지거나 아니면 또다시 일어서 보자는 희망적인 용기를 가지느냐이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은 자살하거나 인생을 포기하고 막가는 악인의 길을 걷거나 하게 된다. 그런데 제 잘못으로 비참하게 된 사람은 자살하지 않고 또 다른 방향으로 잘못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의 탕자는 극도의 비참에 빠지고 나서 아버지라는 두둔자를 생각하였다. 자기가 뿌리치고 나온 그 아버지밖에 그래도 믿을 곳이 없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이 신념이 그를 되살리는 힘이 된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종교적 인생관을 일깨워준다. 사람이 돈에 의지할 때 돈이 탕진되면 돈은 더 이상 그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탕자가 주머니가 두둑할 때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난다. 집도 소용없고 제 아버지도 소용없다. 그러나 마지막 한 푼이 빠져 나갈 때부터 그는 믿을 곳이 없게 된다. 이제 제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에게는 돈 한 푼도 없고 아버지의 집에는 풍족한 생활이 계속된다는 것이 비교되어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대책 없는 오만 속에 끝까지 버티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낯선 땅에서 신발 없이 맨 발로 걸어보면 비로소 제 집의 따뜻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비참하게 된 사람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인생이치를 말하는 격언이다. 이치를 따르는 것이 용기이지 절벽같이 앞이 막힌 오만을 고집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다.
우리의 탕자는 여기서 아버지께 돌아가리라는 결단을 내린다. 아버지의 집에서 거처하는 한 아들 자격이 아니라도 좋다. 일꾼으로 있어도 좋다. 다만 아버지의 보호 아래라면 어떤 자격이라도 좋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일어나 가리라’. 절대 절명의 구렁 속에 빠졌다가 홀연 기운을 차리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성령이 붙들어 주는 손길이 와 닿을 때 이러한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죽음을 앞에 놓고 제자들과 마지막 밤샘을 할 때 피와 땀이 흐를 만큼 극도의 고통에 신음할 때 제자들에게 “일어나 가자”라고 말씀하셨다. 이 난관을 극복하자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 있다. 사도 바오로는 배내 앉은뱅이를 보고 “일어나 똑바로 하시오”라고 재촉하였다(사도 14,9). 믿음에 의지하여 결연한 자신감을 가지라는 촉구였다.
굶주림과 비참한 생활이 탕자로 하여금 마음을 돌리게 하였지만 제가 제 요청으로 재산의 몫을 달래 가지고 제 마음대로 외국에 살면서 재산을 탕진한 주제에 아버지께 돌아간들 무슨 낯으로 아버지를 뵈옵는다는 말인가. 그에게는 아버지 집에서는 아무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어졌다. 그는 아버지에 대하여 도리를 저버렸고 아들로서의 의무 이행도 하지 않고 재산만 탕진하였다.
그의 행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야훼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도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오면서 광야의 고생을 참지 못하고 하느님께 주먹질을 하고 거역한 죄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여러 차례에 걸친 하느님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같은 죄를 저지른 우리의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여기에 하느님의 자비심이 발동하신 것이다. 돌아가서 무슨 말로 아버지께 용서를 청해야 할까. 아버지께서는 용서해 주실까.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는 길은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죄의 고백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구약성서 집회서에는 ‘음란방탕한 생활은 부모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친구나 동료에게 죄를 짓는 것’(집회 17-19)이라고 했는데 모든 죄는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탕자는 이치를 깨달았고 진정 통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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