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복음서가 각기 다르게 전해주는 예수 부활의 신비를 서방교회에서는 주로 찬란한 광채에 싸여 무덤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오시는 그리스도로 그린다. 반면에 동방교회에서는 아무도 자기가 예수 부활을 목격했노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따라 기록된 복음서의 부활신앙을 이콘에 담는다.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간 여인들’과 외경의 묘사에 따라 죽은 이들의 세계인 ‘하데스로 내려가시는 그리스도’가 부활 이콘의 전형이 되었다.
1.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간 여인들(빈 무덤)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간 여인들’의 이콘은 어떤 복음서를 묘사했느냐에 따라 그 구성이 달라진다. 즉 마태오는 두 여인, 마르코는 세 여인이 무덤에 갔을 때 한 천사가 발현했다고 하고, 몇 명의 여인이 무덤에 갔는지 언급이 없는 루가와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었다고 하는 요한은 두 천사의 발현을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시된 그림은 마르 16,1을 구성한 것으로 향료를 든 세 여인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이다. 천사는 빈 무덤을 가리키며 갈릴래아로 가면 거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뵙게 될 것이라는 전갈을 사도들에게 어서 전하라고 하고 있다. 수의에 싸인 채 무덤 밖으로 나왔던 라자로의 수의를 기억하는 그녀들의 눈에 예수의 시체는 누가 훔쳐간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 무덤을 불가해한 방법으로 빠져나가셨음이 여지없이 증명됨을 표현하고 있다.
이 향료를 들고 있는 여인의 이콘은 부활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눈으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과, 또한 ‘엄숙하고 고요한 신성함’도 전해주고 있다.
마태오 복음 28,1-8에 따르면, 천사가 돌을 굴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자로의 소생에서 필요했던 것처럼 무덤으로부터 그리스도가 나오도록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더 이상 무덤 속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여인들이 이미 이루어진 부활을 알게 하려고 한 것이다.
이 이콘에 대한 모든 상세한 설명은 엄숙함과 신성함을 더해준다. 천사와 천사의 메시지, 여인들의 놀람, 무덤의 옷가지들의 상태는 우리에게 “부활의 날은 시간밖에 날들 중의 시초이고, 즉 그것은 하느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성령의 왕국인 미래의 삶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장면은 부활의 천사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16장 5절에서 ‘흰 옷 입은 젊은이’라고 표현한 것과 똑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마태오의 표현에 따르면, 그 장면은 초자연적인 것이거나 요한 묵시록의 천사(10장1절)와 같다. “구름에 싸여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었으며, 얼굴은 태양과 같았으며, 발은 불기둥과 같았다”
또한 천사는 힘의 전달자이다. 그 천사의 내려옴(강하)은 땅을 뒤흔든다. 그의 손은 커다란 돌을 쉽게 굴려버린다. 천사는 성부께로부터 오는 권위에 적합한 왕좌를 받은 자리를 맡고 있다. 천사의 얼굴에서 빛은 밤의 어두움을 부숴버리고, 감추어진 것들의 내면들을 드러낸다. 그의 옷은 눈처럼 희다. -인간의 나약함의 어두움과 초자연적인 대조로서-. ‘죽은 사람들처럼 된’ 경비병들은 묘사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구원의 이야기에 대한 본질적인 설명들만이 포함되며, 자신들의 죄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의 빛에 따라서 다시 깨어나기 전까지는 구원의 ‘그림’의 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사가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중요한 장면이 왜 제자들로부터가 아니라 여자들에 의해서 청중들에게 주어지고 있는가? 신약성서의 세계에서 여자들은 약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루카복음에서 천사들의 노래를 들은 목동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최상의 자리들과 특권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여기의 여자들은 예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천사의 메시지를 받은 이유이다. 제자들은 그것을 받을 준비가 아직도 되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루카복음 8,1-3에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일곱 마귀에 사로 잡혔던 여자임을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마리아의 나약함은 천사의 메시지를 받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실제로 그녀는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죄악의 깊은 굴레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마리아라고만 표현된 다른 여인은 그녀의 신분을 확실하게 나타내주고 있지 않기에 마태 10,3에서 보듯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어머니라고만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마리아가 자신들이 나약하고 중요하지 않음을 아주 잘 알았다는 것과 그들이 할 수만 있다면 이콘의 틀 뒤로 숨어버리려 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애덕 때문에 부활 사건의 드라마 속에 남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그들 사랑의 항거 때문에 무덤 앞에 있다. 그들은 분명히 그들이 죽음의 신을 죽인 사랑을 본 이후에 남을 것이다!
여러분은 수의가 주님의 몸에 입혀져 있었던 그 형태로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마태오복음 28장 13절에 보듯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 숨겼다고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퍼뜨린 소문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요한 20,8에 보듯 그 사랑 받던 제자가 보고 믿게 하려고 한 것에 근거한 묘사이다.
더할 나위 없이 이것은 하나의 ‘매개적 사건’이다. 시간 속에 지각되면서 시간을 뛰어 넘어 발생한 사건이다. 그것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지각될 수 없고 ‘일어난’ 것으로 그리고 ‘일어날’ 것으로 지각될 수 있다. 이 사건 속에서 시간뿐만 아니라 믿음은 제거될 수 없다. 실제로 이 사건은 쉽게 부정될 수는 없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심각한 불신앙의 중지가 요구된다.
바오로에게 있어서는 코린토 전서15,19에서 지적하듯이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열쇠가 바로 부활인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2. 예수 고성소에 내려가심
이 이콘에서 그리스도는 지옥에 나타나시지만, 지옥의 포로로서가 아니라 정복자로서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이들의 구원자로서 나타나시고 있다. 그리스도는 승리의 십자가를 들고 지옥문을 깨뜨리시고 발밑에 십자형의 지옥 문 조각을 밟고 계시며, 심연에 다리를 두고 서 계신다. 때로는 왼손에는 말씀을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들고 계신다. 오른손은 뻗쳐 아담을 무덤에서부터 끌어내시고 있다. 그 뒤를 에와가 따르고 있으며, 신앙 안에서 그분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던 모든 사람 다윗, 솔로몬 등 구약의 여러 선조들 역시 그리하고 있다.
지옥의 개념에 대한 성서적 기초는 특히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가 언급한 불붙는 지옥에 관한 것(5,22) 손발을 묶어서 어두운 곳에 내몰으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라는 내용(22,13) 심판의 날이 오면 자기가 한 말에 대해 해명해야 된다(12,36 25,19)등에 있다.
어떠한 것이든 지옥에 대해 말하는 때는, 우리는 추리로서 말해야 한다. 우리가 고문 또는 고통의 장소로써 지옥을 말할 때, 우리가 이미 친숙해져 있는 이미지와 상태들에 의해, 우리는 무덤이 이런 면을 충분히 알 수 없는 존재의 상태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들은 추리가 우연히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충만하지 않은 이 세상의 사물들의 지상적인 추리들이 혼란과 왜곡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은가?
신적 사랑은 도처에 머물고 있다. 이 사랑은 비록 우리가 신적 사랑을 거부하는데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랑을 거부하려면 우리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우리의 거절이 결정적일수록 우리의 고통 또한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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