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신혼이 무르익을 때쯤 까맣게 잊고 지내던 제게 남편은 슬그머니 입양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설득했던 한마디.
“어머니, 우리 먼 훗날 하느님 앞에 가서 어머니는 입양한 손주 잘 돌봐줬다고,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그 아이 잘 키웠다고 당당히 말씀드려요.”
그렇게 양가 부모님들은 저희 부부의 똘똘 뭉친 의견에 다른 반대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달지 못하셨습니다.
입양에 대해 무지했던 제게 남편은 3가지의 입양 전제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신생아 안 됨. 3살 이상의 큰 아이 일 것.(육아 걱정하지 않아도 됨)
둘째, 딸 안됨.(딸은 입양이 잘되므로)
셋째, 얼굴 기대하지 말 것.(그 시기까지 입양 되지 못한 이유 있음)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때의 제 심정은 ‘이 남자 뭐지?’, ‘그럼, 도대체 누굴 입양하겠단 거야?’하는 억울함과 짜증에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수북이 제시해야하는 서류심사와 긴 상담과정의 터널이 지나고 첫 아이를 품에 안던 날! 뭐랄까…. 정말 남편의 말대로 맨땅에 아무런 기대 없이 품은 아이라선지, 눈, 코, 입만 제자리에 있음 된다던 제 바람과 달리 얼굴도 너무 잘생기고 튼튼하며 야무지게 생긴 녀석이 제 품에 안겨 눈을 맞추고 웃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 광경에 저희 부부는 아이를 바라보며 한동안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기아상태로 모 병원 앞 체크무늬 이불에 쌓여 발견됐다는 사실 외엔 생모의 아무런 쪽지 한 장 없는 아이였고, 발견 당시 의사의 추정으로 계산된 우리 아이의 생년월일은 지금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들의 뿌리입니다.
그 감동으로 안았던 첫 아이가 지금은 14살의 어엿한 사춘기 청소년이 됐습니다. 밝다 못해 눈이 부신 아이. 늘 긍정적이고 통통 튀며 에너자이저이고, 이 세상에 공부 빼곤 모든 게 식은 죽 먹기며 우스운 ‘초긍정’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밝은 성격과 동적인 행동 덕에 아이들을 선동하며 놀기 좋아하는 녀석이라 덕분에 전 늘 가해자(?)의 엄마로 심장 바짝 조이며 여태껏 살아오고 있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 유별난 아이를 길러낸 노하우를 묻는다면 그냥 ‘첫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워 봤어야 비교라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냥,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요 녀석 참 에너자이저인 걸!’ 뭐 이런 정도?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황보현 (빈첸시아·41·가톨릭생명사랑가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