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사도전승’에 나타난 일반신자들의 기도와 영성생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가정에서 영성체
3세기의 교회에서는 주일에만 공식적인 성찬전례가 있었고, 평일에는 없었다. 그러나 신도들은 주일의 성찬전례가 끝난 다음 성체를 나누어 받아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매일 영성체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성체가 바로 주님의 몸이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에 성체를 정성껏 영해야 하는 동시에 각 가정에서 성체를 정성되어 잘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는 다른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 공심재(空心齋)도 지켜야 했다. 집에 모셔둔 성체를 비신자나 쥐나 다른 짐승이 먹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하며, 또 성체를 영하는 동안에 성체의 어떤 조각이라도 바닥에 떨어지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규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바로 주님을 업신여긴 죄인으로 단죄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공동체적 식사와 축복받은 빵
‘사도전승’ 제24~30장에서는 성찬전례와 구별되는 공동체적 식사(아가페 애찬)에 대해 규정하면서 곁들여 성체와 구별되는 ‘축복받은 빵’(eulo-gia)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공동체적 식사는 예루살렘 초대 공동체에서도 있었으며(사도 2,46), 그 후 교회 문헌들에서도 나온다. 이 공동체적 식사는 주로 저녁에 가정집에서 거행되는데, 얼핏 보아 성찬전례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이 식사에는, 성체성사 제정에 대한 주님의 말씀, 성령을 청하는 기도 등 성찬기도문에서의 핵심적인 요소가 빠져있어 성찬전례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그래서 이 식사에 사용되는 빵은 주님의 몸인 성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축복받은 빵’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식사는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절도 있게 행해져야 한다. 과식하거나 과음하여 추대를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하며,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지 말고 조용히 성직자의 교훈적인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직자가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한 평신도들만의 식사에서도 절도 있고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되 축복예식은 할 수 없다. 식사가 끝나면 신자들은 어려움에 처해있는 다른 신도들에게 음식을 보내기도 한다. 이처럼 공동체적 식사는 단순한 회식이 아니라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참석자들 사이의 친교를 나누고 더 나아가 참석하지 못한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까지 염려하는 사랑의 잔치(愛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기도시간과 영성생활
‘사도전승’ 제41장은, 신자가 하루 동안 바쳐야 할 기도시간들(아침기도, 제3시기도, 제6시기도, 제9시기도, 저녁기도, 야간기도)의 의미에 대해 말하면서 아울러 영성생활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모든 신자는 아침잠에서 깨어나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손을 씻고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 잠에서 깨어 기도하는 시각을 ‘닭이 우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 시간에 이스라엘의 자손들(베드로)이 그리스도를 부인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을 알아보고 죽은 이들이 부활할 때 누릴 영원한 빛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그 날을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침기도가 끝나면, 교리강습이 있는 날에는 교회에 서둘러 가고, 없는 날에는 자기 집에서 성경독서를 하라고 한다. 제3시기도(=오전 9시)를 바치는 이유는, 이 시간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구약의 율법(레위 6,13)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예표하는 제물의 빵이 바쳐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6시기도(=정오)는, 십자가에 달려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을 본받는 것이며, 제9시기도(=오후 3시)는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흘리시면서 돌아가신 주님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은 의인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을 본받아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기도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바친다.
또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는데, 부부가 모두 신자이면 같이 기도를 바치고, 아내가 비신자이면 옆방에 가서 혼자 기도하고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한밤중에는 별들과 나무들과 물들이 주님을 찬미하기 위해 한 순간 정지하며, 하늘의 천사들이 의인들의 영혼과 하나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기도한다는 점에서 야간기도는 우주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또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한밤중에 오시는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3시간 간격으로 다섯 번 바치는 낮시간경들(아침기도, 제3시기도, 제6시기도, 제9시기도, 저녁기도)과 밤중에 바치는 야간기도는 후에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의 성무일도로 발전되었다.
사실 생계를 위해 매일 일을 해야 하는 평신도가 이러한 기도규칙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나, 여기에 나타나 있는 정신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항상 기억하고, 주님의 구원신비에 동참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매일 이러한 기도생활과 영성생활을 한 초대신자들은 올바른 신자생활을 실천할 수 있었으며, 박해 중에 그리스도를 증거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자기 목숨까지 바쳐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생활을 통해 우리의 생활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