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루카24,13-35)는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제공해 줍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은 과연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고 있으면서도 ‘지금, 바로 여기에’ 그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으면서도 결국은 그 믿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들이 안고 있는 모순입니다.
쌩 떽쥐베리의 ‘어린왕자’라는 책에 보면 여우가 왕자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올바른 것은 마음으로 봐야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어떤 부인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위로 올려가지고 왔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남편이 모르더랍니다. 화가 난 부인이 남편에게 “당신은 마누라라는 여자가 집에 있는 줄이나 아셔요?”하고 대들자 신문만을 보던 남편이 쳐다도 보지 않고 “당신은 그 성질이나 고쳐요”하면서 대답하더랍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마누라 머리가 위로 올라갔는지 아래로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이런 모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초파일을 맞이하는 법어에서 조계종의 이성철 종정은 ‘사탄도 부처’라는 말을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눈을 뜨면 불자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부처며 눈을 뜨면 크리스천들에게는 세상이 모두 주님이 됩니다. 이처럼 눈을 뜨고 못 뜨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흑과 백’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유명한 배우 토니 커티스와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한 영화입니다. 둘 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백인과 흑인 두 사람이 한 수갑에 채워진 죄수들로서 이송되는 도중에 함께 탈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둘이는 피부색뿐만 아니라 생각도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서로 원수처럼 미워하며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과부가 사는 농가를 만나서 수갑을 풀게 되며 백인은 그 집에 머물게 되었고 흑인은 다시 도주의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후였습니다. 집에 남은 백인이 과부에게 “그 검둥이가 지금 어디쯤 갔을까?”하고 물어봅니다. 그때 여자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라고 지나가는 말로 대답합니다. 이 말에 백인이 깜짝 놀라 묻자 과부는 말하기를 아까 길을 가르쳐 줄 적에 수렁에 빠지는 길을 일러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백인의 감겼던 눈이 번쩍 뜨이게 되었습니다.
검둥이가 결코 죽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원수처럼 미워했지만 고생을 함께 했던 형제를 불행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백인은 반사적으로 흑인을 구하기 위해 뛰어갑니다. 여자가 총으로 말려도 다 버리고 흑인을 살리기 위해 달려갑니다. 결국 백인은 흑인을 구했으나 두 사람은 다시 잡혀서 한 수갑에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평화롭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만 뜨면 세상은 온통 진달래꽃 피는 봄날이 됩니다. 원수가 없고 모두가 예수요 부처입니다. 그러나 눈을 못 뜨면 1년 365일 모두가 쓰레기 같은 지옥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눈을 떠야 합니다. 지금 내 곁에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믿는 우리가 어려울 때 붙잡고 매달릴 분은 오직 예수님뿐인데 그 주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면 도대체 신앙의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한 때때로 힘든 세상을 어렵게 걸어가는 우리들인데 우리 곁에 동행해 주시는 주님을 뵙지 못한다면 도대체 부활의 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 주님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는 중대한 이유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 또는 고집이나 완고함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보며 오로지 자기만 봅니다. 술꾼은 술만 보며 노름꾼은 화투만 보듯이 자기 머릿속에 갇혀있는 그 옹졸함 밖에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게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제가 시골 본당에 있을 때 일흔이 넘은 어떤 할머니가 외딴집에 혼자 사셨습니다. 한번은 찾아가서 “할머니는 외롭지 않으세요?”하고 물으니까 그 할머니가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더니만 “예수님과 함께 사는데 무엇이 외로와요”하면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때 저와 함께 웃으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실감 있게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시고 땅에는 인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생하신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십니다. 늘 우리와 함께 동행 해 주십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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