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지학순 주교와 함께 농민사회 기독교 사회운동가들에게는 치악산의 상징이요 일반인에게는 서예가로 알려진 무위당(无爲堂) 장일순(세자요한·65세)씨와, 개신교 목사이면서 동화작가, 번역문학가이기도한 이현주(47세)목사가 지난해 가을부터 「노자 도덕경」을 함께 읽으면서 「노자 이야기」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노자를 통해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실체를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진실과 진리 앞에서는 이기심(利己心)이란 없다”(무위당)는 이들의 노자강(講)이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다산글방·상)란 책이 돼 출판된 것.
지난 91년 암이 발견돼 현재 원주 기독교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장일순씨는 “이현주 목사가 문병을 와서 노자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하자고 해 시작한 것이 책이 돼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현주 목사는 이에 대해 “노자(老子)를 가운데 모시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눔이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영광이요 즐거움이었다”고 말하고 “그 즐거움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 이 책을 만들었다고”고 밝혔다.
장일순씨는 이번 책에서 자신과 묵향의 연을 굳게 해준 공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무위당 장일순씨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인 여운 장경호와 차강 박기정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그러나 60년대 군사정권의 탄압이 아니었으면 마음의 평정에 들기 위한 방도로 난초를 그리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즉 병이 아니었으면 「노자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노자 이야기」는 「도덕경」 81장 가운데 24장을 담고 있는데 주석서는 아니다. 장일순씨와 이현주 목사는 이 책을 주석서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 이 시대에서 그냥 느끼는 대로 노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고 전한다.
“일체를 나누어 보려는 서양식 사고로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전제한 장일순씨는 “모든 문제를 하나로 보고 이것의 근원을 찾아 삶속에 그려내야 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하느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도(道)를 말로 하면 말로 된 도가 도 그 자체는 아니다. 이름을 붙이면 이름이 곧 이름의 주인은 아니다. 「도덕경」의 그 유명한 첫 구절에서 이들은 “그동안 내가 한 말은 강을 건너기 위한 나룻배처럼, 듣고 그 뜻을 얻은 뒤에는 반드시 버려야 하는 방편”이라던 부처의 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강을 건너려면 배를 저어야 하니, “깨닫지 못한 자들의 말”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둘러서 비유로 말하곤 하던 예수의 모습을 또 노자에 겹쳐 그려내고 있다.
암과의 투병 중에도 그칠 줄 모르는 민족과 민초들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고 있는 무위당 장길순씨는 “나라의 지도자는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란 예수의 명심해야 할 것”이며 “이 ‘노자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 바로 이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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