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못자리’ 불릴만한 전국 각 지역의 신앙촌들, 한 명의 성소자를 배출하기도 힘든 노릇인데 오랫동안 그처럼 많은 성소자를 탄생시킨 배경은 무엇일까. 핵가족시대를 살면서 점차 성소에 대해 둔감해지려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들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많은 성소자를 배출하고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성소의 못자리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실감케 해주는 또 다른 징표이기도 하다. 5월2일 성소주일을 맞아 대전교구 내의 대표적인 성소마을인 구합덕본당을 찾았다. 잊혀 가는 성소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바람에서….
본당설립 이후 출신 사제만 28명. 교적을 옮겼거나 어릴 적 성소의 싹을 키웠던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30여 명을 훨씬 넘는다.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이는 1백여 명. 이쯤 되면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성소 못자리’로 꼽히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은 전형적인 농촌본당으로 바뀌었지만 한때 전국 굴지의 본당으로서 신앙의 모태 역할을 담당했던 대전교구 구합덕본당(충남 당진군 합덕면)은 지난 90년 본당설립 1백주년을 맞았다. 올해로 설립 1백3주년이 되는 셈이다.
구합덕본당의 역사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내는 것은 이것이 성소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신앙전래 역사가 오래된 곳일수록 대개가 그들 나름의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곧 성소를 길러내는 온실 역할을 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이 고장에 복음의 씨가 처음 뿌려진 것은 1780년대, 내포(內浦)지역의 사도라 불리는 여사울 출신 이단원(공사가)에 의해서였다고 전해진다. 1791년 신해박해로 교세가 주춤했으나 1백여 년 후 파리외방전교회 귀틀리에 남 신부가 내포이남 지방을 사목하면서 본당을 설립했다. 남 신부는 당초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양촌에 설립했으나 1899년 교통이 좋은 지금의 구합덕(합덕리)으로 옮겼다.
오랜 신앙의 역사와 함께 합덕을 성소의 못자리로 일컫는 데는 이 지역이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라는 이유가 있다. 합덕에서 4㎞떨어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곳. 그래서 이곳 신자들 사이엔 “김대건 신부님을 불러주신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와 김 신부님께서 천국에서도 이 지역의 성소를 위해 특별한 은총을 빌어주시리라”는 믿음이 짙게 깔려있다.
뿐만 아니라 1780년대 내포지역 전교의 근거지였던 합덕은 병인박해 시작 무렵인 1866년 3월30일 보령 갈매못에서 같은 날 순교한 다블뤼 안주교, 메뜨르 오신부, 위앵 민신부, 황석두(루까) 등이 교리서 저술 편찬작업을 하면서 선교의 본거지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곳이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구합덕본당 신자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이가 있다. 7대 8대 본당 신부를 지낸 백 필립보(문필)신부와 박노열 신부가 그들이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모범적인 삶은 특히 성소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21년부터 50년까지 30여 년간을 본당 신부로 사목하다 6·25때 피납, 행방불명된 백 신부는 현재의 성당을 신축하고(1929년)솔뫼성지를 매입, 46년 김대건 신부 기념비를 세웠으며, 해방 후 보육원도 설립했다.
그 자신 천식으로 고생하면서도 성무집행 중 신자들의 영신적 삶을 위해 극진한 사랑을 보였고, 다 헤진 수단을 입을 정도로 청빈을 실천한 백 신부는 재임시 예산 당진 서산본당을 분리시키고 신리사적지를 매입했다.
6·25때는 당시 보좌이던 박노열 신부를 피신시키고 자신은 체포됐는데, 신자들은 “내 양을 위하여 내 생명을 바치노라”라는 백 신부의 유언을 되새기며 57년 성당에 기념비를 세웠다.
백 신부가 피납, 행방불명되자 신자들은 그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대전지역까지 전쟁터를 헤집고 다녔으나 결국 못 찾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50년부터 11년간 본당 신부로 재직한 박노열 신부 때 특히 성소자가 많이 배출됐는데 이때 서품된 사제 10여 명은 80년 박 신부 선종 후 ‘바오로 성소계발 장학회’를 설립, 이를 통해 아버지 신부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전임 본당회장 홍성일(바오로)씨는 “1백년 본당 역사 가운데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성직자에 대한 존경심”이라면서 “성직에 대한 이러한 존경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커서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하는 열망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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