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한국평협 회장들(왼쪽부터 손병선 현 회장, 최홍준·한홍순·류덕희·여규태·권길중 전 회장).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손병선, 담당 조성풍 신부, 이하 한국평협)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7월 21일 대전 주교좌대흥동성당에서 열린 기념식은 한국평협이 ‘탄생’을 기억하고 한국 평신도사도직 활동의 새로운 50년에 대한 희망을 품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기념식은 연극 ‘빛으로 나아가다’ 초연과 특별강연, 기념식, 기념미사로 이어졌다. 한국평협의 50살 생일잔치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 한국 평신도의 본보기 김익진 프란치스코
◎… 한국평협 창립 50주년 기념식은 김익진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다룬 연극 ‘빛으로 나아가다’로 시작했다. 김익진(1906~1970)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 감화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서 참 제자로 산 한국 평신도의 모범이었다. 한국평협이 출간한 「불꽃이 향기가 되어」에 소개된 인물로, 한국평협은 창립 50주년과 평신도 희년을 맞아 김익진을 주제로 연극을 준비했다.
연극 ‘빛으로 나아가다’는 전라남도 목포의 한 부잣집에서 태어난 김익진의 삶을 표현했다. 말을 타고 전장을 누리는 군인이 되고 싶었던 김익진은 지켜야 할 나라가 없었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의 청년으로 사상의 혼란을 겪던 그는 일본에서 우연히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읽고 가톨릭교회에 귀의한 뒤, 모든 재산을 내어놓고 청빈과 비움의 삶을 실천했다. 김익진은 1955년 본지 편집동인(편집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한국교회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 직무수첩」과 「동서의 피안」, 「내심낙원」 등의 책을 번역해 한국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김익진의 감동적인 신앙이야기를 눈물을 훔치며 보던 관객 사이에는 그의 차녀 김화영 수녀도 있었다. 김 수녀는 “오늘 연극은 일본과 중국에서 유학을 하며 사상적 갈등을 겪던 아버지가 신앙인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면서 “아버지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소속으로 수도생활을 하던 김 수녀는 건강문제로 수도회에서 탈회하고 현재는 재속회인 예수 까리따스 우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 한국평협 50년 역사 조망
◎… 이어 한국평협 최홍준 고문의 특별강연이 이어졌다. 2010~2014년 18·19대 한국평협 회장을 역임했던 최 고문은 ‘한국 평신도 활동의 연원과 방향성’을 주제로 1968년 한국평협의 탄생 배경부터 평신도사도직의 의미를 설명하며 평신도사도직의 소명과 미래 활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최 고문은 한국평협 설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부터 비오 12세 교황이 소집한 3차례의 세계평신도대회가 초석이 됐다고 강조했다. 최 고문은 “특히 공의회 폐막 2년 후인 1967년 열린 제3차 세계평신도대회는 여러 지역교회에 평신도사도직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도화선이 됐다”면서 “당시 대회 촉구사항 중 평신도 기구의 민주적 설치 항목도 들어 있었는데, 이 대회에 참석했던 전 대전교구장 황민성 주교와 유홍렬 단장 등 대표단을 중심으로 이듬해 한국평협의 전신 ‘한국가톨릭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가 조직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평신도사도직 활동이 문화의 복음화와 성령의 은사를 통한 ‘마리아적 교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고문은 “문화를 빼고 현대사회를 논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평신도사도직도 문화사목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평협이라는 조직은 궁극적으로 여러 회원 단체들을 품어 안으면서 어머니로서, 마리아로서 그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라면서 “성모 마리아의 자애로운 사랑으로 교회를 지탱해 나간다면 평신도사도직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답도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 각계각층의 축하
◎… 창립 50주년 기념식은 한국평협 홍보대사 듀오 메타노이아의 축가 ‘나를 따르라’로 시작됐다. 메타노이아는 ‘회개’를 뜻하며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과 테너 송봉섭이 생활성가 저변 확대를 위해 결성했다. 김정식씨는 “누가 뭐라해도 교회의 주인은 평신도”라면서 “한국평협 창립 50주년과 평신도 희년을 지내는 지금, 평신도 스스로 교회의 주인으로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정상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동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염 추기경은 “모든 평신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우리 교회가 성장했다”면서 “세상에 신앙을 표현하는 본보기가 돼 세상의 유혹과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해인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도 동영상을 통해 “평신도 여러분이 계시기에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아름답게 걸어왔다”면서 “앞으로도 평신도들이 교회를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을 믿고 바라고 희망하면서 저희도 기도로 함께하겠다”고 축하인사를 전했다.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 손희송 주교는 “오늘 기념식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도록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성직자는 성직자대로 각자가 받은 고유한 사명을 마음 깊이 새기는 시간”이라면서 “평신도와 성직자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의 힘을 합쳐 주님의 포도밭인 이 교회를 성실하게 가꿔 나갈 각오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세상과 함께하는 평신도 선언
◎… 이날 한국평협 50주년 기념식의 정점은 한국평협 50주년 선언문 낭독이었다. 한국평협 손병선 회장은 ▲미사와 성사에 자주 참례해 영적 힘을 얻고 사도직 활동의 양식으로 삼을 것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해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말씀을 실천할 것 ▲소외된 이웃, 청년 등과 연대해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추구하며 빛과 소금으로 하느님 나라 실현에 노력할 것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존중하고 생태계 보존에 앞장설 것 ▲분단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용서와 화해, 협력에 힘써 이 땅에 평화를 이룰 것을 다짐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손 회장은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교회의 주체로서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고, 사회인으로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 복음화의 길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평협 창립 50주년 기념미사에서 손병선 회장이 한국평협 50주년 선언문을 유흥식 주교에게 전달하고 있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왼쪽)와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있다.
한국평협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참가자들이 한국평협 50주년 선언문을 읽으며 선서하고 있다.
한국평협 창립 50주년 기념공연 ‘빛으로 나아가다’에서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소속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