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작업실에서 성경필사를 하고 있는 석창우 화백. 그는 “팔 없이 살아온 지난 30여 년이 더욱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의수 끝 쇠갈고리로 화선지를 팽팽하게 편다. 붓을 쇠갈고리에 고정시키더니 화선지에 한 자 한 자 공들여 써내려간다. 성경 말씀이다. 서울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석창우(베드로) 화백은 붓글씨 성경필사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달 9일, 그는 무려 3년 6개월 동안 매일 5시간씩 써내려간 신·구약 성경필사를 완성했다. 구약성경은 2015년 1월 시작해 2년여 만에, 이어 신약성경을 1년여 만에 완성했다. 그가 써내려간 성경필사는 길이 25m, 폭 46㎝ 화선지 총 115개 분량으로, 합치면 길이가 2875m에 달한다. 필사에 사용된 붓만 7자루다. 또 성경필사를 하면서 만들어진 자신의 서체를 ‘석창우체’로 디지털화 하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쉽지 않았을 그의 성경필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선물이다. ‘팔 없는 화가’로 유명한 그는 팔 없이 살아온 지난 30여 년을 되돌아보며 모든 것이 하느님 섭리임을 깨달았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경필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느님 덕분에 가능했다고 석 화백은 말한다.
팔 없이 살아온 세월은 힘겨웠지만 지난 삶 가운데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석 화백. 이후 하느님 안에서 남은 삶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사고 후 요양을 위해 전주로 이사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림을 그려달라고 칭얼대던 아이들, 쇠갈고리에 펜을 고정해 그렸던 참새와 독수리, 수묵화에 입문하기까지 모두 하느님이 계획해놓으신 삶의 여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기공학도였던 그는 30살에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이후 화가의 길로 접어들어 ‘수묵크로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의 작품은 “세월과 아픔을 이겨 낸 고뇌가 긍정의 힘으로 서려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찰나에 대상의 혼을 훔치는 신비로운 재주를 지녔다”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지난 3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수묵크로키 시연을 선보였으며, 2014년 소치 동계장애인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알리는 수묵크로키 시연을 펼치기도 했다.
성경필사를 하는 동안 그에게는 여러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환상통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 비장애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환상통은 절단된 손이 마치 있는 것처럼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오는 통증이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심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성경필사 후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됐다.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 변화다. 그는 “사고 후 수없이 많은 수술을 하며, 혈액순환계에 문제가 생겼는지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몸에서 땀이 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5시간 정도 성경필사를 하고 나면 등과 가슴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고 밝혔다.
그 어떤 변화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성경필사를 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하느님 말씀이었다. 그는 “성경을 써 내려가면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의미를 알게 된 순간 모두가 기적이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경필사를 하면서 항상 하느님과 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성경필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자신이 쓴 성경을 활용해 도자기로 만든 ‘성경의 집’을 봉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