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술가가 어수선해 보이는 공사장을 하나의 이색적인 작품으로 변화시켜 오가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설치미술가 양주혜씨(38세·소화데레사). 양씨는 서울 힐튼호텔 로비 개보수 공사장의 받침기둥에 빨강, 노랑, 파랑 등 밝은 색을 칠해 볼품없는 납 기둥을 거대한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연출했다.
“저의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할만한 필요충분조건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비록 공사 중일지라도 호텔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황량한 느낌을 받기보다는 좋은 감정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작품의 의도였지요”
양씨의 이런 생각은 호텔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공간뿐만 아니라 어떤 곳이든 어느 장소든 간에 상관없이 적용돼 왔다. 양씨는 90년 서울 여의도 일신방직 사옥 신축공사 현장 가름막 틀 설치작업, 91년 7량의 열차에 실크 프린트 2천5백만 장을 붙여 열차에 대한 기존관념을 깨부수는 ‘우정의 문화열차’ 설치작업을 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무조건 예쁘게만 보이자는 것이 아니지요. 일종의 사회적인 기능이 뒤따라야 합니다. 열차나 건물들이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우리 공동이 사용하는 것이잖아요. 모방이나 획일적인 것보다는 우리의 특색과 정신을 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양씨는 교보빌딩, 문화부 건물 등에 설치미술을 도입, 새롭게 변신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언제나 그 벽은 높기만 했다고.
양씨는 특히 사당~과천 간 도로 확장공사를 위해 볼품없이 깎아놓은 산을 자신에게 맡겼다면 여러 가지 모양을 내서 깎아 조금은 색다른 설치미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공사장이나 건물 등의 거대한 공간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못 쓰는 계란판, 헌 이불 조각, 사다리, 의자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들을 주로 작품의 소재로 삼는 양씨는 마치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가듯 점을 찍는 독특한 작품을 보여줘 왔다.
평신도 신학연구의 선구자였던 고 양한모 선생(아우구스티노)의 1남3녀 중의 셋째 딸이기도 한 양씨는 “작품활동에 있어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이나 실용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이 점에서는 아버지의 정신과 기질을 조금은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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