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세계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뜻밖에도 온갖 비리와 부정, 불명예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입시부정, 각종 과외변태, 경쟁과 눈치만 남은 수험생들의 성적비관 자살 등은 교육에 있어서 부끄러운 1등을 달리고 있는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그것은 또 빗나간 교육열이 빚어낸, 부인할 수 없는 우리 교육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과외열병
고3인 외아들을 두고 있는 서울 강남의 주부 K씨(39)는 요즘도 아들의 과외문제로 한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해 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왜 망설였을까』하는 자책감마저 든다. K씨의 고민은 반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해오던 아들의 성적이 지난해 초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럴수도 있으려니 하던 것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걱정이 앞선 K씨에게 어느날 아들이 던진 한마디는 그녀의 뇌리를 때렸다. 아들이『반 동료들은 A급 선생님을 모시고 과외를 하는데 자기는 그렇질 못하니 성적이 떨어질수 밖에 없지 않느냐』며 원망섞인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남들이 다 한다는 과외를 않고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이 늘 대견스러웠던 K씨는 그제야『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소위 부유층이 산다는「강남」에 살지만 기업체 중견사원인 평범한 남편의 수입으로는 남들처럼 한달에 수십만원씩의 과외비를 지출하기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K씨는 수소문끝에 주 3회씩 월 15만원하는 그룹과외에 아들을 보내고서야 안심하게 됐다. 그리고는 큰 짐 하나를 던 것 같은 요즘『왜 진작 과외를 시키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마저 든다고 한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고충을 K씨의 경우를 통해 엿볼수 있다. K씨의 경우는 그래도 평범한 사례에 속한다.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는 과외는 실로 백양백태이고 그에 드는 비용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과목당 월 기백만원씩 하는「족집계 교사」과외, 주산ㆍ속셈ㆍ고시학원 등 소규모 학원의 변태 그룹과외, 독서실 과외, 암기과목만 집중 지도하는「반짝과외」, 게다가 본 과외를 보완하기 위해「새끼과외」까지 성행하고 있다.
이처럼 변태 과외가 판을치는 것은 『과외를 해야 진짜 실력』이라고 믿는 학부모들의 맹신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주위에서 다들 과외를 하는 판에 우리만 안 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렇게 지출되는 연간 과외비는 교육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2조원에 이를 것으로 교육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결국 학부들의 과잉기대, 자기위안 심리, 과시욕 등이 이러한 과외낭비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외 문제의 심각성은「갖지 못한자」의 위화감과 불안감을 더욱 깊게 한다는데서도 지적되고 있다.
한때「망국병」이라고 까지 불리워진 과외 말고도 급우들간의 우정은 옛말이 되어 버린 살벌한 교실분위기도 빗나간 교육열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D-00일. 일사각오로 1점을 쟁취하자」등 입시구호를 게시판에 큼직하게 써붙인 고3 교실은 친구의 컨닝을 고발하고 각성제까지 먹으며 눈치와 점수경쟁만 남은 박제된 공부방으로 변모했다.
돈을 받고서야 답을 가르쳐주는 우등생, 내신등급 때문에 친구의 컨닝을 고발하는 막다른 경쟁심, 성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요즘 수험생들이다.『모르면 집에 가서 과외선생이나 참고서를 보고 공부하면 되지 나머지 학생들의 수업진도를 방해한다』며 질문하는 급우를 힐책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살벌한 전장(戰場)으로 변해버린 고3 교실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하는 물음만 쌓이게 한다.
입시생들 사이에「고교 교육헌장」으로 통하는 다음의 문구는 비정상적인 경쟁사회 속에서 이들이 느끼는 참담한 심정의 일면을 보게 해준다.
『우리는 명문대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 선배의 빛난 입시성적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이기주의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친구타도」에 이바지할때다…(중략). 열악한 마음과 빈약한 몸으로 입시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무시하고 성적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 눈치의 정신을 기른다 (후략)』
행복은 성적순?
지난해 11월 한 서울대생의 자살이 매스컴을 타며 사화의 관심을 끈적이 있다. 그 해 경기고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 전도유망하던 이 학생의 자살이유가 성적비관이었다는 것이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학교나 가정 어딜 가나 「입시」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선뜻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자살」에의 충동이다. 지긋지긋한 고3 시기를 지나고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마저 목숨을 버릴 지경이라면 입시생들의 갈등은 어떠한지 짐작할만하다.
지난 89년 9월 서울 C여고 1학년이던 맹모양은 『꼭 일류대학에 들어가야만 행복하게 되나요. 나는 대학이 아니라도 내 적성, 내 소질에 맞는 일을 하고 싶은데…』라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되풀이 되는 「입시 채찍질」에 견디다 못해 『학교에 가기가 두렵다』는 비명을 남기고 쓰러져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님」을 믿고 싶었던 맹양은 그러나 성적에 따라 모든것이 저울질되는 비인간적인 교육풍토를 「죽음」으로써 항변한 것이다. 맹양의 사연은 곧 영화화되어 우리 사회의 경종을 울리긴 했지만 이 땅의 교육현실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전국의 고3 학생을 75만여 명으로 잡을 때, 대학 진학이 첫째 목표인 인문계 학생은 49만여 명(65%). 그러나 이들이 목표로 한 대학의 정원은 4년제가 20만명 이내고 전문대까지 합해도 30여만 명 정도다.
여기에 막강한 재수생 그룹이 있고, 검정고시 출신자들까지 합치면 한 해 대입응시자는 90여만 명에 육박한다. 따라서 지원자 중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이는 22%, 전문대까지 포함해도 30%만이 입시관문을 통과할 수 있어 결국 70%에 달하는 학생들은 애당초부터 대학입시의 「들러리」인 셈이다.
30%의 대학진학자들 위해 그 나머지를 들러리로 세우는 현생 입시교육은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를 갈등으로 내몰아 우리 교육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필요한 지식전달만 있을뿐 배움이 없는 곳으로 전락하게 됐고, 그 안에서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입는 이는 바로 우리 청소년이다.
대입부정 파문
성적불량을 비관한 학생들의 잇단 자살, 이기와 과시욕이 낳은 변태 과외 등과 함께 학부모들의 「입시부정」사건은 우리 교육현실이 안고 있는 가장 부끄러운 치부가 아닐 수 없다.
금년 1월 한양대ㆍ덕성여대 후기입시 대리시험 부정적발을 시발로 꼬리를 물고 터진 대규모 입시부정 사건은 최근 답안지 사전유출 사건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도무지 그 끝이 어딘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입시부정은 그 수법이나 규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교육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실무자들이나 교사 교수들까지 부정의 핵심인물로 개입됐음이 드러나 우리 사회 전반의 부정과 비리가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케 해준 사건이었다. 또 대학 입시부정은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고질적인 병폐였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
지난 2월18일 국회 교청위에서 공개된 ‘교육부 학사 실태 조사서’에 따르면 88년부터 91년까지 연대·고대 등 명문 사립대학을 포함, 모두 21개 대학에서 입시부정이 저질러졌고 입시부정이 있은 한성대 등 11개 대학과 다른 28개 대학 등 39개 대학에서 채점오류가 발생, 합격자가 뒤바뀐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서를 통해 공개된 입시부정의 유형은 불법기부 입학, 미등록으로 인한 불법결원 보충, 교직원 자녀 특례입학, 예체능 실기비리 등으로 대부분 교직원과 학부모간 금품의 밀거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부정입학 사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일부 부유층 학부모들의 삐뚤어진 교육열을 이용한 지능범죄라는 점에서 병든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으로 지적된다.
어제의 대학 총장이 입시부정에 연루된 인물로 검찰에 구속되고, 교단에 서야 할 교사가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 채 TV에 비쳐지는 것이 오늘날 이 땅의 교육 현실이다.
‘교육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구문(舊文)이다.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나도록 바꿀 줄 모르는 열악한 교육환경은 우리 사회의 교육이 위기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교육’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인간의 존엄성이 제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출세 지향의 교육제도와 대학교육을 이에 이르는 일차관문쯤으로 보는 인식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들은 또 “대학을 나와야 사람구실을 한다”는 사회인식과 무턱댄 ‘대학환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같은 낭비교육이나 입시부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학(私學)의 재정난을 덜기 위한 기부금 입학제나 교육쇄신을 위한 제도 및 조직정비 등은 사실상 부차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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