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6,1-7)
이 비유의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재산 관리인은 분명히 간교하고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것을 알고 책망은 커녕 칭찬을 했다. 약삭빠르게 일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복음사가가 이 비유를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소개할 때에 예수님의 평상적인 교훈인 정직하지 못한 일과 위선을 경계했다면 이 비유속의 관리인의 처사를 칭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적절한 비유처럼 들리지만 비유가 목적하는 바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납득이 갈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복음전파의 시초부터 하느님 나라의 사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지만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동원해서, 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얻어내야 할 목표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요점이다.
그러니 오늘의 가르침은 윤리문제가 아니고 하느님 나라냐 세상의 나라냐 하는 것을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하는 가치판단과 그 쟁취를 위한 슬기로운 방법론 모색을 권고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언젠가는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로와야 한다고 가르치셨고(마태 10,16) 하느님 나라는 강력한 힘으로 쟁취한다(마태 11,12-13 : 루카 16,16)고 했을 때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생활을 계속하기 위하여 폭력도 쓰고 잔꾀도 부린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만 이때의 강렬한 힘은 폭력이 아니고 온갖 어려움과 난관을 이겨 나가는 강력한 의지의 힘이다. 이 비유의 관리자는 앞날의 생활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당한 수단까지 동원하는 약삭빠른 꾀를 썼다.
뱀은 성서에서 악마의 화신으로 상징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동물로 되어 있지만 그 저주받은 형편에서도 자기 살 궁리를 약삭빠르게 해나간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숲속을 헤치며 땅바닥을 살살 기면서 자기 방위를 한다.
뱀처럼 슬기로와라 라고 할 때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뱀의 생에 대한 노력, 재산 관리인의 앞날을 도모하는 슬기가 요구된다는 말씀이다.
다만 하느님 나라의 생명을 살기위한 슬기는 거룩한 슬기이어야 할 것이다. 세속 사람들은 돈을 다루는 데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하다. 그 수법과 재주를 천상보화를 얻는데 쓴다면 얼마나 거룩한 일이겠는가.
그 재주를 발휘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을 돕는 일이다. 제 것을 남을 위하여 쓴다는 것은 세속 사람들이 보기엔 참으로 바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세속의 자식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식들보다 더 약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잘 들어두어라”는 다짐과 강조를 하시면서 “세속의 재물이지만 그것을 잘 써서 친구들을 사귀어 두라”고 말씀하신 것은 돈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쓰는 것이 천상 생명을 기쁘게 사는 첩경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내가 지금 도와주는 사람이 지금은 곤경에 처해 있지만 천국에서 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위치에 있을 지도 모른다. 돈은 충실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천상 일도 잘 다룰 수 있다. 우리가 세속의 재물을 잘 다룰 줄 모르면 하느님도 천상 재물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실 것이다. 작은 일에 충실치 못하면 큰일에도 충실치 못하다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예수의 제자된 사람은 모름지기 이와 같은 슬기와 형안을 가져야 한다.
이제 주님이 오셔서 셈바치기를 요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세속을 버리라고 권고 받았지만 그것은 세속에 대한 사욕을 끊어 버리라는 교훈이다. 세속을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일이 그들의 사명이다. 그것은 사랑과 봉사로 살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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