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흡연인구는 줄잡아 1천만여 명. 세계 굴지의 ‘흡연왕국’이라 불릴만 하다. 또 매년 2만3천여 명이 흡연과 관련하여 사망하는 것으로 90년도 한 조사통계는 밝히고 있다. 이 숫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두 배에 가까운 것이다. 담배·흡연으로 인한 해독이 널리 알려지면서 성인남자들의 흡연율은 조금씩 줄어드는 반면 여성과 청소년들의 흡연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고3 수험생의 경우 10명중 7명은 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고 이 중 5명은 현재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보고서도 있다. 이는 미국 청소년들의 흡연율보다 거의 두 배 이상 높은 것이다. 부끄러운 1등을 달리고 있는 청소년 흡연율, 그 실태와 예방책을 알아본다.
서울 낮기온이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던 5월7일 오후 혜화동 대학로. 늘 그렇듯 많은 인파로 북적대는 가운데 화단 옆이나 혹은 벤치에 무리지어 앉은 청소년들이 담배를 물고 무어라 연신 떠들어대고 있었다. 가끔씩 욕까지 섞어가며 주고받는 대화중에 상대방의 시선을 의식하는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의 흡연광경이다.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혜화동 종로 등지의 록까페 같은 곳은 흡사 허용된 청소년 끽연소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뿐 아니다. 중·고등학교 화장실이 학생들이 피우다 버린 꽁초들로 늘 어지러운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수원에 사는 주부 K씨는 얼마 전 아들의 바지를 빨려다가 주머니에서 담배 부스러기를 발견하고는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수험생인 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고심하다 겨우 사실대로 다그친 K씨는 “나만 피우는 게 아니다”는 아들의 말에 할 말을 잊었다고 한다.
청소년 흡연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 금연운동 협의회가 작년에 실시한 ‘전국 남자 중·고생 학년별 흡연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생의 흡연율은 44.8%로 일본의 26.2%, 미국의 15.0%보다 훨씬 높아 사실상 세계에서 최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20.2%는 과거에 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는 반면 비흡연 학생은 35.0%에 불과했다.
고교 1, 2학년생 중에서도 현재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각각 14.3%와 38.2%로 나타났으며, 흡연경력을 가진 학생까지 합하면 40~60%정도가 담배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이 조사에서는 여학생의 경우도 고교 3학년생의 경우도 고교 3학년생이 4.3%, 2년생이 1.9%, 1학년생이 1.3%가 상습 흡연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한 교육부의 통계자료는 청소년 흡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징계를 받은 중·고생은 92년 8월말 현재 총 9천8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숫자는 겉으로는 전국 중·고생(4백46만1천9백여 명)의 0.2%에 불과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징계를 받은 학생의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고교생의 경우 40~50%, 중학생은 10~3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흡연학생에 대한 처벌이 관대해진 것도 흡연학생 증가에 따른 변화중 하나다. 학교 관계자들은 “교내흡연 단속은 거의 포기상태나 다름없다”고 털어놓았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흡연학생에게는 유기정학 처분이 내려졌으나 요즘은 학생들의 흡연이 일일이 단속할 수 없을 정도로 늘자 체벌 위주에서 계도 위주로 바뀌고 있다. 교사들은 단속보다는 “교실에서는 피우지 말 것, 꽁초는 꼭 휴지통에 버릴 것”이라고 사정하는 형편까지 됐다.
따라서 흡연을 하다 적발돼도 꽁초를 줍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약간의 체벌이 고작이고 “너무 많이 피우지 말라”고 권고할 뿐이다. 또 “솔직히 서로가 마주치면 어색할 뿐이어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울만한 장소 주변에는 굳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교사들의 말이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흡연이 급증하는데 대해 일선 교사들은 “청소년들이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다 학교나 사회 안팎에서 청소년들의 흡연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흡연동기에 대해서 ‘호기심 때문에’ ‘친구와 어울리기 위해서’ ‘멋있게 보이기 위해’ 등으로 대답, 담배에 손을 대는 것이 주로 심리적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교복 자율화로 학생 신분의 구별이 어려워 진데다 담배자판기의 확대 설치 등으로 청소년들의 흡연에 대한 유혹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복 자율화는 이를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길거리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담배자판기는 분명 학생들의 흡연을 부추기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작년 8월 경기도 부천시의회가 이례적으로 담배자동판매기의 설치금지 조례를 제정, 공포함으로써 뜻있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으나, 담배자판기 규제범위 등을 놓고 “성인전용 지역을 제외하고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학교 도서관 등 청소년 출입시설 주변만을 대상으로 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 흡연의 심각성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였다.
흡연으로 인한 해악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특히 청소년들은 니코틴 중독에 쉽게 빠지게 되며 저산소증을 일으켜 두뇌활동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한 의학보고서에 의하면 25세 이후에 흡연을 시작한 경우 사망률이 비흡연자의 5.2배인데 비해 15세 이전에 담배를 피우면 사망률이 18.7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제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는 흡연이 음주와 함께 예기치 않던 질병이나 폭력 자살 자해 및 성범죄를 야기할 뿐 아니라 성격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인격장애나 정신장애의 요인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끼리는 자연스럽게 그룹이 형성되고 이는 술이나 다른 약물까지 탐닉하게 되는 동기가 돼 비행을 저지르도록 유도하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청소년 흡연은 더욱 문제가 된다는 것.
흡연은 그밖에도 호흡기 질환과 후두암 구강암을 비롯한 인체 모든 장기의 암 발생률을 배가시킨다는 것은 여러 조사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연세대 김소야자 교수(정신간호학)가 지난 4월 생명문화연구소 세미나에서 청소년의 흡연과 약물사용의 상관관계에 대해 발표한 논문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흡연자 집단이 약물을 사용하는 비율이 통계적으로 월등히 높게 나타나 (73.5%:32.6%)청소년들의 흡연은 음주ㆍ약물 남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흡연을 할수록 약물을 사용할 가능성이 두 배나 더 높았다.
청소년들의 음주·흡연은 10대 탈선의 시작으로 간주되어 온 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인식이었다. 비행청소년을 구별하는 특징처럼 인식되던 이러한 행동들이 보편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흡연 음주가 탈선의 주요한 계기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흡연 습성이 고착되는 청소년기 이전에 담배의 유해성을 확고히 인식시킴으로써 이를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금연운동협회 김일순 교수(연세대 보건대학원)는 “담배광고와 담배자판기 설치를 엄격히 규제하고 학생 금연지도를 담당하는 부서를 설치하는 등 사회-학교-가정이 총체적으로 청소년 흡연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92년 6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담배자판기는 총 1만4천9백98대. 이 가운데 한국담배인삼공사나 개인 등 내국인이 설치한 것은 5천8백48대, 그밖에 필립 모리스, 브라운 월리암 등 외국의 담배판매사들이 설치한 자판기가 9천1백50여 대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청소년들이 담배구입처로서 자판기를 이용하는 비율은 전체의 59%이고, 그 중 외국산 담배자판기 이용률이 63.3%인 것으로 금연운동 협의회 조사결과 밝혀져 담배광고 및 자판기 설치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포괄적인 금연법을 제정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행 미성년자 보호법, 공중위생법 등에 금연규정이 있으나 규제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포괄적인 금연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세계 70여 개국에서 금연법을 제정,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이밖에 담배가격을 대폭 인상하거나 학교 전체를 완전 금연구역으로 지정, 교사들도 금연을 솔선수범하고 학교관계 행사장에서는 성인도 일체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하자는 견해도 있다.
그러자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자녀들 앞에서 흡연을 삼간다든지 하는 금연지도가 선행돼야 하고 나아가 청소년 금연을 위한 범사회적인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 의료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 소비자연맹이 벌이고 있는 ‘금연운동’이나 일부 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금연학교’ 등과 같은 사회 전반적으로 금연을 고무하는 풍토가 시급한 것으로 이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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