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좌담 ‘남북교류협력, 교회 역할은?’ (3) ‘북한인권 문제, 실상과 개선 방안’
정치와 이념 떠나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인권 다뤄야
■ 좌담 순서 안내
1 ‘남북교류와 종교교류 전망과 활성화 방안’
2 ‘대북지원 이대로 좋은가? 어떻게 할 것인가?’
3 ‘북한인권 문제, 실상과 개선 방안’
‘북한 인권 문제, 실상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진행한 가톨릭신문 3차 기획 좌담회는 7월 25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하상방에서 열렸다. 패널로는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요한 사도) 박사와 서울대교구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임순희(헬레나) 박사가 참석했다. 사회는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맡았다.
임순희 박사 서울대교구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하는 태도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관련 문제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이슈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하는 모습에는 남·남 갈등이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북한 인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은 어떠해야 할까요?
▲윤여상 박사(이하 윤 박사): 인권은 균형의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균형은 위아래가 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인권 문제에 균형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미 편견이고 잘 맞지 않는 접근입니다. 인권 문제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내정 간섭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여전히 냉전 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교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인권은 인권이고 교류는 교류입니다. 남북 교류를 정치적인 문제로 해석하기 때문에 인권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임순희 박사(이하 임 박사): 동의합니다. 인권은 천부적 가치이고 인류 보편이 지닌 권리입니다. 여기에 이념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인권 문제 자체를 보지 못하고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로 바라봅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고 잘 풀리려던 것도 다시 막힌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얘기 자체가 인권의 개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 북한 인권 문제의 실상
-장 국장: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보도들이 문제의 실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 인권 실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런 증언들이 실제 북한 인권 실태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윤 박사: 북한은 외부의 접근이 차단된 통제된 사회이기 때문에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생활했던 3만2000여 명의 북한 주민들이 현재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 나와 있습니다. 3만 명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이분들의 증언이 일관성이 있고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이뤄졌다면 누구도 그 증언을 부인하거나 거짓으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기억의 한계 등으로 세부적인 내용이 다를 수는 있지만 3만 명이 동일하게 증언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분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 인권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며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고 조직적·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원인과 처방에 대해서도 유엔 차원의 공식 보고서가 나와 채택된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북한 인권 문제 실상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임 박사: 북한 인권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드러난 사실의 이면을 읽어야 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연구하며 북한이탈주민들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증언은 단순한 증언이 아닌 절실한 호소입니다. 이분들의 증언을 함부로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북한이탈주민들이 출연하는 종편 프로그램은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 실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희화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북한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한 교회의 역할
-장 국장: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을뿐더러 한국교회가 들어가 선교나 사회복지 사업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임 박사: 교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우선돼야겠지요. 북한 인권에 앞서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북한 사회, 북한 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으면 인권에 대한 이해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윤 박사: 교회는 세속의 방법이 아닌 교회만의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사해 본 결과로는 아직은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도 적고 의지도 별로 없습니다. 대북지원에 대해서는 의지도 있고 실제로 지원한 사례도 있습니다만 나쁘게 보면 이것은 세속의 방법입니다. 드러낼 수 있고 사진을 찍어 홍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은 보이지 않고 널리 알리기 어려운 영역의 일입니다. 교회 정신에 따를 때 교회는 가장 낮은 것, 가장 약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미 속세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경쟁적으로 하는 것에는 굳이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 고민이 필요합니다. 건물을 지어주고 도로를 지어주는 것은 교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인권 문제야말로 세계 역사를 봐도 신앙인들의 손길이 먼저 닿았으며 오래 머물렀던 영역입니다.
-장 국장: 인권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방법이 막연한 문제도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위해 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무엇입니까?
▲윤 박사: 우선은 북한 인권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물론 시작은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기도가 기본이 돼야겠지만 인권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을 도울 수도 있고 북한 내 종교적 희생자들을 돕는 캠페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용을 알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임 박사: 교회 내에서도 북한 인권에 대한 견해와 태도가 서로 다른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문제에 있어 어떻게 신앙인의 목소리가 서로 다를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나서서 북한의 실상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알리고 보편적 가치의 측면에서 인권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윤 박사: 지금도 북한에서는 종교 때문에 순교하는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남북한의 교류 협력을 위해 박해받는 이들에 대해 침묵한다면 교회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보편적 인권을 향한 교회의 길
-장 국장: 그러나 여전히 북한 인권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교류가 어려워진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또한 교류를 하다 보면 인권 문제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윤 박사: 그것은 세상의 얘기입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런 논리를 설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가 지금은 교류와 협력이 중요한 때니 더 참자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임 박사: 많은 경우 우리는 불편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것 자체가 인권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윤 박사: 교회는 교회의 길만이, 성직자에게는 하느님의 길만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보수의 길, 진보의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는 동일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도 때리면 아프고 굶으면 고통스러운 인간입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것이 인권 문제입니다.
▲임 박사: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시민 단체들에 대한 정부와 교회의 지원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남북 화해가 우선이라고 문제를 누르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윤 박사: 북한의 인권 탄압 피해자들, 희생자들을 교회가 지금부터 지원하고 보듬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남·남 갈등만큼 북·북 갈등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그 성격은 다릅니다. 남한에서의 갈등이 같은 사안에 대한 인식과 접근의 차이라면 북한의 갈등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대를 살아가기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사회 체제 안에서 갈등과 상처가 응축돼 있지만, 이것은 언젠가는 집단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잠재적 갈등 요소입니다. 북·북 갈등은 엄청난 수준으로 닥칠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주는 위로와 치유의 역할을 지금부터 교회가 준비해야 합니다.
7월 2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북한 인권 문제, 실상과 개선방안’ 좌담에 참석한 임순희 박사, 장병일 편집국장, 윤여상 박사(왼쪽부터).
정리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
사진 권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