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6,9-13)
예수께서는 ‘약은 청지기의 비유’를 기화로 세속에 대처하는 세 가지 교훈을 말씀하신다. 첫째는 세속의 자식들이 재물에 온 마음을 두는 그 열성과 믿음의 농도를 빛의 자식들은 영성세계를 위하여 배우고 그만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도둑질이야 나쁘지만 도둑이 도둑질을 하기 위하여 얼마나 치밀한 준비와 슬기로운 행동을 하는가. 그 준비와 슬기를 좋은 일을 하는데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양이가 쥐나 참새를 잡을 때 끈질기게 참고 기다린다. 그 끈질김과 인내를 사람이 배운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사실 영성세계의 삶을 도모하는 데는 세속의 재물을 요리조리 변통하는 것과 같은 슬기가 있어야 할 것이고 도둑의 치밀한 준비, 고양이의 끈질긴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는 예비작업과 슬기를 권고하셨다. 여기서 ‘세속의 재물’이라고 번역한 말은 ‘불의의 맘몬’이라는 원문의 번역이다. ‘맘몬’이란 말은 재물, 돈이란 뜻으로 현대어에서 통하지만 본래 히브리어 ‘마아몬’은 ‘철석같이 믿는 것’ ‘안전한 저장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마태오 6장24절, 루카 16장 9,11, 13절에 사용되고 있다.
예수의 말씀에서 부자는 불행한 사람으로 나타나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꿰뚫고 나가기가 더 쉽다’(마태 19,24 : 마르 10,25)라던가,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기 때문이다’(루카 6,24) 등. 여기서 부자, 부요한 사람이란 것은 재물과 돈이 그의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 즉 돈과 재물에 신앙심을 두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맘몬’이란 말은 하느님과 대치되어 하느님 대신 재물을 섬기는 것으로 신격화된 것으로 표현되었다. 당시 이교도들 중 맘몬이라는 신이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대립되는 것은 악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뜻으로 재물을 통칭하여 ‘악의 맘몬’이라고 한 것이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것은 불의하게 얻은 돈이라는 것과는 관계없이 돈 자체가 하느님 자리를 차지할 때는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 집회서에서도 재물이 악하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이 훈계하고 있다. ‘재산을 지키느라 밤을 새우면 지치고 재산 걱정을 하다보면 잠을 못 이룬다…’
황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로울 수가 없고 그것을 좇는 사람은 속속들이 썩게 된다. 황금을 좇다가 망한 자들이 많다. 황금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황금은 함정이며 어리석은 자들이 거기에 걸려든다. 황금을 좇지 않고 책잡힐 일이 없는 부자는 행복하다(31,1-8). 사도 바오로는 ‘그들의 배가 그들의 하느님이다’(필립 3,19)라고 했다. 그러니 재물이 악이 아니기 위하여는 재물을 자기 배 채우는 데만 쓰지 말고 하느님을 위하여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남을 돕는 일에 쓰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교훈은 매일매일의 범사(凡事)를 충실하게 처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재산을 쓰는 일을 작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세상사는 자기 것이란 없고 모든 것이 남의 것이다’(에픽테토스). 복음사상에서는 참된 우리의 것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뿐이다. 그러니 참된 재물에 충실하려면 먼저 하찮은 세속 재물을 옳게 쓰는 충실성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제 셋째 교훈은 명백해진다.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과 힘을 다하여’(마르 12,29-30) 섬겨야 할 대상이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하는 것은 그 답이 명백하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라고 하신 말씀은 이런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재물은 우리의 육신생활과 이웃사랑의 방편으로 주어졌고 생활을 향상시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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