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출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베네딕타·33)씨. 지휘자 바로 왼쪽에 앉는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심장’이자 ‘지휘자와 단원들 간 다리 역할’을 하는 자리로, 큰 책임감이 따른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동경해오던 오케스트라 악장이 됐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훌륭한 뮤지션들과 함께 하게 돼 영광이고 설렙니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 순간 벌어지는 일들에 모두 하느님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문 오케스트라 중 한 곳이다. 2012년 정명훈씨가 상임지휘자로 이끌 당시 북한의 은하수관현악단과 파리에서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했던 오케스트라다.
4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박지윤씨는 2004년 ‘티보 바르가’ 콩쿠르에서 18살의 최연소 나이로 1위를 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롱티보 콩쿠르,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으로 우아하고 성숙한 음악성을 겸비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져 왔다. 15살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간 그는 파리고등국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실내악 전문사 과정 등을 졸업했다. 이후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전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힘든 일도 없지 않았다. 10대 후반 찾아온 어깨통증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멈춰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던 그는 바이올린이 아니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다행히 통증은 줄어들었다. 그는 좌절하는 대신 몸을 보살피고 연습시간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 파리 한인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주일마다 성가대 반주를 했다. 그는 “신부님과 신자분들이 악기 소리가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며 “신나서 열심히 반주했다”고 말했다.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연주 여행을 할 때에는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더라도 성당에 들어가 기도했다. 유럽에는 어느 작은 도시라도 곳곳에 성당이 있어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어렵지 않았다. 그는 “잠시 앉아 기도를 드리면 늘 마음에 위안이 되고, 포근함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출산과 육아, 연주 활동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그는 거창한 예술 철학 대신 “연주 활동과 가족 그리고 신앙의 균형을 잘 잡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탈렌트를 받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른 분들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