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6,19-31)
가난한 이에게 복이 있고 부요한 이는 비참하다는 사실은 복음서 전체에 줄기차게 흐르고 있다. 이제 그 결론이 오늘의 비유에서 생생한 이미지로 부각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요한 사람이란 그저 부자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재산을 쌓아놓고 흥청망청 향연에 취해 있으면서 하느님도 이웃도 나몰라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복을 받을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의 손길이 닿아있는 경건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복을 받을 가난한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화를 입을 부자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생각이 온통 재물에만 기울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옛날에 배가 불러 ‘하느님이 다 뭐냐’라고 뇌까리며(잠언 30,9) 매일 향연으로 날을 지새우는 부자 한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특별히 하느님께 항거하는 일은 없었지만 하느님도 필요 없었고 이웃이 굶어 죽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었고 날마다의 생활은 호화 속에서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부자이다 보니 조상 모세의 말씀도 예언자들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부잣집 문간에는 헐벗고 굶주린 가난뱅이가 앉아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거지였는데 몸이 성하지 못한 불구가 그를 그토록 가난하게 만들었다. 안에서는 진수성찬에 노랫가락이 들려오고 밖에서는 이 처참한 거지의 구걸하는 소리가 또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희락과 노애(怒哀)의 세월도 흘러서 결국은 두 사람이 다 죽었다. 부자도 죽고 가난뱅이도 죽는다는 사실은 죽음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살아생전에 부자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는지, 가난뱅이가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는 이 비유에서 이야기가 없고 다만 부자가 부의 관리를 잘못했다는 점만이 부각되어 있다. 부자였던 것이 행운이었다면 먼저 하느님께 감사하는 겸손이 필요했고 불쌍한 이웃을 도와야만 인간의 도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지를 않았다.
가난뱅이는 그의 이름 라자로라는 말이 뜻하듯이 ‘하느님의 손길이 닿아있는’ 사람이었다. 복음서에서 가난이란 말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겸손이란 뜻으로 쓰여 있다.
복음서의 비유에서는 ‘어떤 사람’이란 익명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관례인데 여기서만큼은 ‘라자로’라는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그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란 뜻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역역하다.
한편 부자의 이름은 없지만 옛날 어떤 사본에는 ‘니니배’라는 이름으로 명기되어 있다. 니니배는 부요한 도시로서 하느님의 진노가 폭발한 심판의 도시 이름이다. 세상에서 호화로운 생활과 불우한 생활이 내세에서는 거꾸로 그 운명이 바뀐다는 도식적인 훈화는 언제든지 악한 부자와 선한 빈자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고대 이집트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식이 없던 어느 부부사이에 기적적으로 시-오시리스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시-오시리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떤 부자 한 사람은 굉장히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며 죽었고 한 가난뱅이는 보잘 것 없이 죽었다. 그 부자는 죽은 이들의 땅에서 고문을 당하고 가난한 이는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은 살아서 선행을 많이 했고 부자는 악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민담이 유대아교에도 있다. 가난한 학자는 바르마얀이라는 세리의 이야기인데 세리는 한 가지 좋은 일을 했다 해서 성대하게 묻혔고 학자는 쓸쓸하게 땅에 묻혔다. 전자는 세상에서 보상을 받았고 후자는 현세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학자는 죽어서 낙원강가에서 평화롭게 살았고 세리는 강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