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옛날 로마시대에 천주교가 여러 세기에 걸쳐서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많은 치명자들이 나왔지만 그러나 교회는 마치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웠습니다. 이때 우리 교회가 박해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어이없게도 신자들이 은밀하게 모여서 어린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를테면 별 해괴망측한 사이비 종교가 나타나서 인륜을 거스른 야만적인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로마의 오해요 또한 탄압구실이었습니다.
교회는 그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몸을 서로 나눠 먹기 위해서 함께 모였습니다. 이것은 또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루카 22,19:1 코린 11,23-25 참조).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과 그분의 업적을 가슴에 새기고 또 그것을 실천했으며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서로 나눠 먹음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힘과 지혜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살과 피를 서로 나눠 먹는다는 내용이 와전되어 마치 천주교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이비 종교로 오해되고 조작되었던 것입니다.
오해는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생명의 빵’에 대한 설교를 하셨을 때 사람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아주 큰 불평과 거부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요한 6,66). 생명의 양식인 성체는 인간이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살기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먹을수록 죽어갑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병적으로 먹고 마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배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들고 다니면서 먹고 마십니다. 들어갈 곳이 더 없을 것 같은데도 계속 먹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썩어 없어질 양식에 지나치게 묶여져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먹어댑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하느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까지 우리에게 주셨는지 진지하게 묵상해 봐야 합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죽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살고자 한다면 무엄하게도 하느님을 먹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먹는 방법 이외에는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을 먹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며 생각만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대죄악입니다. 인간의 미래는 그래서 절망이었습니다. 아주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의 살과 피를 인간의 음식으로 나눠주셨습니다. 당신의 살을 나눠주시는 방법 또한 실로 오묘하고 신비로웠습니다. 누가 지금까지 이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었습니까. 막말로 당신의 몸을 송두리째 내어 주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잡아먹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당신은 그 몸을 떼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하느님을 먹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미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찾아주시는 최고의 전례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살을 음식으로 나눠주시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하느님께 바치는 최고의 제사이면서 동시에 천상의 식사로 불리는 최고의 잔치입니다.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하느님의 사랑입니까?
우리는 매 주일마다 혹은 매일 주님의 거룩한 성찬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자격도 없는 죄인들이 감히 하느님을 먹기 위해서 모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먹는 우리는 우리도 하느님처럼 그 사랑을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살까지 먹는 우리가 이웃에게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자체로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마치 도둑이나 강도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살과 피를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갖도록 합시다.
오, 거룩한 신비여! 하느님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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