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과를 참 좋아한다. 보관하기도 쉽고 커다란 크기의 ‘후지’ 사과가 아니라 한입 베어 물면 새콤함이 느껴지는 빨간 홍옥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가을이 되면 부모님은 홍옥 한 궤짝을 작은 방에 들여놓으셨다. 그 궤짝 위에서 책을 보며 사과를 먹던 행복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시장에서는 대부분 홍옥보다는 ‘아오리’나 ‘후지’ 사과를 팔았고 홍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혼한 첫해 가을, 우리 부부는 영주 부석사로 하루 나들이를 했다. 영주까지 열차를 타고 가 허름한 터미널에서 부석사 가는 버스를 탔다.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한창이었다. 무량수전을 지나 안양루에 서니 장엄한 소백산맥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량수전 뒤편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신라 의상대사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 선묘 낭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바위였다.
절의 역사만큼, 천년의 시간동안 마르지 않았다는 선묘정 우물에서는 시원하고 맑은 물이 샘솟았다. 나도 한 모금 떠서 마셨다. 내려오는 길에 절 입구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한 할머니의 바구니를 발견했다. 바구니 속에는 새빨간 홍옥이 담겨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한 봉지를 사서 새콤한 맛을 느껴봤다.
십 몇 년이 흐른 후,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영주에서 가까운 문경으로 가을 여행을 떠났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를 따라 레일 바이크도 타고 폐광이 된 갱도를 살펴 볼 수 있는 석탄 박물관도 둘러봤다. 돌아오는 길, 어느 집 사과나무에서 익어가는 빨간 사과가 정겨웠다. 차를 멈추고 근처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사과 따기 체험을 했다. 주렁주렁 열린 빨간 사과를 따서 바구니에 가득 담아보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논에는 노란색으로 벼가 익어간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흠뻑 받으며 제 맛과 제 빛깔을 담기 위해 노력했을 홍옥 사과. 그리스도인인 나도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잘 익히며 살아가고 있을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새콤함이 퍼져 나가는 홍옥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고 있는지, 주님을 믿는 참된 기쁨을 나누고 있는지 돌아본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