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 아프리카 부룬디 공화국에는 최초의 여자고등학교가 설립됐다. 평생 교육자이자 의사로서 이웃을 위해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신앙인 최정숙(베아트리체) 선생을 본받기 위해 지어진 ‘최정숙여자고등학교’다. 비영리 단체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회장 김선희)과 사단법인 한국희망재단(이사장 최기식 신부)이 세웠다. 오는 9월 10일부터 부룬디 여고생 225명의 교육 보금자리가 될 최정숙여자고등학교의 개교를 앞두고 최정숙 선생에 대해 돌아본다.
■ 독립운동 펼치며 이웃사랑 실천
1902년 제주도 제주시에서 태어난 최정숙 선생은 1977년 2월 22일 눈을 감을 때까지 불우한 시대 속에서도 이타적인 삶을 산 인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렀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교육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눴다. 제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신성여학교 1기 졸업생인 최 선생은 1921년 여수원을 개설해 여성교육과 계몽에 앞장섰다. 3년의 노력 끝에 1949년 신성여자중학교 설립을 인가 받아 교장으로 취임했고, 1953년 신성여자고등학교를 신설해 초대 교장을 지냈다. 신성여중·고교 교장을 역임하는 동안 최 선생은 단 1원의 보수도 받지 않았다.
최 선생은 의사로서도 자신보다는 남,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절친했던 강평국 선생이 항일운동 등으로 건강이 나빠져 30대에 숨지고, 옥고를 치른 자신도 복막 협착증을 얻자 최 선생은 의학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1939년 37세의 나이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의학공부를 마친 뒤 1944년 10월 제주시에 소아과 전문 정화의원을 열었다. 최 선생은 열악한 환경에 치료 받지 못했던 아이들을 무료로 돌봤다.
혼란스러운 시대상에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갈수록 많이 찾아왔지만, 최 선생은 그때도 무료진료를 이어갔다. 진료비는커녕 의약품 마련을 위한 빚이 계속 늘어갔지만, 무료진료는 계속됐다.
힘든 시대에도 최 선생이 다방면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밑바탕에는 천주교신자로서 주님을 향한 영성이 있었다. 12살에 세례 받은 최 선생은 수녀가 되길 원했다.
당시 독립운동으로 옥살이를 했다는 ‘전과’ 탓에 수녀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청빈·겸손·소박함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모범 삼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신성여중·고교 교장으로 지내면서는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을 교훈으로 정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산 최 선생은 결국 그 공로들을 인정받아 1954년 4월 10일 로마교황훈장을 받았다.
아프리카 부룬디 공화국에 설립된 ‘최정숙여자고등학교’. 한국희망재단 제공
■ 최정숙 선생 뜻 이어 학교 설립
이번에 설립된 최정숙여자고등학교는 이러한 고인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다. 처음엔 신성여중·고교 동문 6명으로 구성된 ‘샛별드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들도 최 선생과 같은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해 사정이 어려운 국가에 여자고교를 설립하겠다는 각오로 2014년부터 3년간 1억여 원을 모아왔다. 이후 학교설립 준비과정에서 한국희망재단과 협업하게 됐고, 사업이 확장됐다. 모금액 2억여 원으로 학교를 세웠고 지난 8월 6일 준공식에서 학용품 등 후원물품도 현지에 전달했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고효숙(스텔라·60·제주 연동본당) 부회장은 “작은 나눔에서 시작해 학교를 세우는 결과로 이어져 저희도 놀랍다”며 “항상 남을 위해 헌신했던 최 선생님의 정신을 잇는 노력에 도움을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모두 이뤄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번 최정숙여자고등학교 설립을 계기 삼아 저희도 앞으로 더욱 ‘경천애인’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신성여중·고교 교장 송동림 신부는 “최정숙여자고등학교 설립은 단순히 머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신앙을 실천했던 최 선생님의 행적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며 “갈수록 이기적으로 살게 만드는 각박한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신앙인들이 제2, 제3의 최정숙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신성여중·고교 동문들을 중심으로 최정숙 선생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제주도민과 신자 등 200여 명으로 구성된 비영리 단체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