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상 조각’ 창시자 이용덕 교수,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서 개인전
삶과 죽음, 경계를 나눌 수 있을까
내년 1월 6일까지 ‘불가분’ 주제로
“나이 들수록 완전하신 하느님께 의존”
조각가 이용덕 교수 개인전이 내년 1월 6일까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불가분’을 주제로 열린다. 자신의 ‘역상 조각’ 작품 앞에 선 이 교수.
“손바닥과 손등의 경계가 어디쯤이라고 생각하세요?”
조각가 이용덕(루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최근 그는 ‘경계’에 대해 의심하며 존재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손바닥과 손등을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것처럼, 경계는 우리가 관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존재해야 손바닥과 손등이 의미 있는 것 아닌가!’
그의 전시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2019년 1월 6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과연 하느님이 내가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가”와 같은 존재론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터와 자석 등을 이용한 움직이는 조각과 영상 등 새로운 작품 7점을 선보인다. 또 그가 창작한 영역인 ‘역상 조각’(Inverted sculpture) 20여 점도 전시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는 인식론에 기반한 현상적 작업들과 존재론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담긴 작업들을 함께 전시한다”며 “이 두 가지가 충돌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현상적 작업은 ‘역상 조각’이다. 역상 조각의 창시자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쳐 왔다. 역상 조각은 음각으로 새겨진 조각이지만 양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부조다. 양각에 익숙한 사람들의 습관적인 인식을 이용해 창작한 작품세계다. 실제로 역상 조각은 관객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며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눈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며 “하지만 이제는 현상이 ‘존재’라는 절대성을 향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주제는 ‘불가분’(不可分·INDIVISIBILITY)이다. 경계를 나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 존재와 존재 사이의 경계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펀지로 만들어 부력을 잃고 점점 침몰해가는 듯한 형상을 한 작품 ‘부력’(buoyancy)은 우리 삶을 의미한다. 죽음이 결국 점점 부력을 잃어가는 스펀지 배 같다는 해석이다.
전시장 한 가운데 있는 ‘대화자’(dialoguer)는 하얀 머리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작품이다. 커다란 두 머리가 대화하는 듯 움직인다. 하지만 그는 “대화한다고 느끼는 것은 현상일 뿐, 이 작품은 단순히 머리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동 대학원 졸업 후 독일 베를린 예술종합대학에서 마이스터쉴러 과정을 졸업했다.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198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2011년 김세중 조각상, 2016년 문신미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조각, 서울대교구청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조각 등 다양한 성상을 만들었다. 그는 “성상을 만들다 보면 하느님께서 내 손만 빌려가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의적이 아니라 그분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는 불교 신자였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르심’에 이끌려 대학 졸업 후 성당을 찾았다. 당시 그는 스스로가 불완전 하다고 생각했다. 부모, 형제에게 의지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하느님께 모든 걸 의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간절히 바친 기도가 이뤄지는 작은 기적도 체험했다. 세례를 받으며 한 기도가 이루어진 것. 그는 첫 작품을 예수님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 봉헌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대부 소개로 광주 무등산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 예수성심상을 만들어 봉헌했다.
“엄청난 의미가 담긴 첫 작품입니다. 당시 전율이 쫙 느껴졌어요. 세례를 주신 신부님께서 세례 받으며 한 첫 기도는 꼭 들어주신다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람과 삶,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그는 요즘 신앙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느님은 제가 의존할 수 있는 완전한 분이시지요. 젊었을 때와 달리 이제는 하느님이 더욱 크게 느껴져요. 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존재들, 혹은 더 큰 뜻을 위해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