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
걷고 기도하고 염원하라, 평화를
국내 비롯 16개국서 56명 참가
6박 7일간 DMZ 생태탐방로 등 순례
폭력과 전쟁 없는 세상 위해 기도
8월 16일 참가자들이 강원도 양구 두타연을 행군하고 있다.
평화를 생각하고, 나누고, 걷고 또 걷기 위해 전 세계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가 마련한 ‘2018년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이하 ‘2018 평화의 바람’)가 8월 16~22일 6박 7일 일정으로 열렸다. 올해는 국내 참가자 36명을 비롯한 인도, 멕시코, 베트남, 라오스, 탄자니아, 몰타 등 16개국 72명의 참가자와 관계자를 포함해 100여명이 순례에 함께했다. 8월 16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발대식으로 출발한 ‘2018 평화의 바람’은 DMZ 일대를 함께 걸으며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순례와 함께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나누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 ‘평화’는 탐욕을 뺀 인간성 그리고 스마일이다
8월 16일 첫날 저녁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전 통일부장관 홍용표(프란치스코)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강연이었다. ‘평화란 무엇인가?’(What is Peace?)를 주제로 진행한 홍 교수의 강연은 한반도 분단과 평화를 향한 과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청년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다음날인 8월 17일 저녁 청년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한 평화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평화 부채 만들기’ 행사에 참여했다. 청년들은 제각각 평화는 ‘자유’,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 그 자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기대 없는 사랑’ 등으로 정의했다. 평화에 대한 생각을 적어 완성한 평화 부채를 서로 보여주며 청년들은 평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탄자니아에서 유학 와 현재는 영남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샤요 아가피티(28)씨는 평화란 ‘우비나담’(Ubinadam)이라고 적었다. 스와힐리어인 ‘우비나담’은 영어로는 ‘Humanity’로 번역된다. ‘우비나담’은 인류, 인간, 인간성, 인류애 등 다양한 뜻을 아우른다. 아가피티씨는 “탐욕을 뺀 인간성이 곧 평화”라며 “휴머니티를 바탕으로 타인을 돕고 이해하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참여한 셰릴 타리크(16)씨는 파키스탄어로 ‘무스크라 헐트’라는 단어를 적었다. 타리크씨는 이는 ‘스마일’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웃어보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이 평화를 정의하는 단어 또한 다양했다. 그러나 이해와 존중, 화해와 사랑 그리고 ‘스마일’은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였다.
■ 철책선을 따라 걷는 여정
강원도 양구 두타연,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이어지는 DMZ 생태 탐방로, 강원도 철원생태공원 십자탑 탐방로, 강원도 고성 일대 해파랑길 등 비무장지대를 걷는 행군도 계속됐다. 특히 17일 오전 임진각에서 율곡습지를 향해 걸으며 참가자들은 인근 부대에서 진행되는 연습 사격 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보나르 시나바리바 신부는 “아름답게 보존된 자연 속을 걷고 있었지만 사격 소리를 들으며 분단의 현장에 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시나바리바 신부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이번 순례에 참여하게 됐다. “평화는 진리”라고 말하는 그는 가장 의미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묻자 ‘순례’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비무장지대를 따라 걷는 과정 자체가 평화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며, 만약 직접 걷지 않았다면 비무장지대가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공간임을 이처럼 생생하게 알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다.
참가자들은 18일 오전에는 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노동당사까지 약 10㎞ 구간을 자전거로 달렸다. 청년들은 땀흘려 걷고 달리며 분단의 아픔과 평화를 향한 열망이 공존하는 공간을 온 몸으로 느꼈다. 브라질과 헝가리에서 참여한 청년들은 비무장지대를 걷고 달리는 내내 묵주를 손에 쥐고 있었다. 평화를 고민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청년들의 순례는 매일 매일 계속됐다.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가 일으킬 평화의 바람
8월 18일 오후에는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깜짝 참석해 청년들과 강원도 철원 한탄강에서 진행된 래프팅에 동참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같은 날 저녁 진행된 미사와 만찬에도 참석했다.
미사 강론을 통해 슈에레브 대주교는 “평화를 향한 여정도 래프팅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처음에는 즐거워 보이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 장애물들은 함께 힘을 합칠 때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여러분이 참여한 이 순례가 모두 평화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뻤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평화를 이루기 위한 평화의 사도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어로 진행된 이날 미사는 슈에레브 대주교를 비롯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정세덕 신부, 순례에 함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멕시코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사제들이 공동집전 했다. 미사에는 조명균(안드레아) 통일부 장관도 참석해 청년들과 함께 평화를 기도했다.
한편 염 추기경 또한 미사 후 진행된 만찬에서 축사를 통해 “여러분이 살아갈 시대는 평화의 시대”라며 “마음과 마음의 교류를 통해 여기 모인 청년들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평화를 생각하고 평화를 나누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청년들이 새로운 시대에 평화의 바람을 불러오는 주역이 되길 바라는 희망은 모두 같았다.
6박7일간의 여정 동안 청년들은 비단 남북 간의 화해뿐 아니라 폭력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 또한 갈등과 분단으로 인한 세계 곳곳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기도했다. 8월 22일 해단식을 마지막으로 헤어지며 청년들은 “앞으로 올 세대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각자의 나라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도 우리가 이곳에서 배운 평화의 자산들을 잃어버리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8월 16일 강원도 양구 두타연 행군 중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8월 17일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조별로 조를 대표하는 깃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8월 17일 오후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 마련된 통일 체험관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