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6,19-31)
이 비유에서 어떠한 방법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현세에서 유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이 최고가 아니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오히려 악한 부자와 선한 빈자는 그 운명이 내세에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오늘의 비유에 등장하는 빈자는 가난하다 못해 거지이다. 거기에다 성하지도 못한 몸에 헌데 투성이이다. 이 사람은 제 발로 걷지도 못해서 사람들이 부잣집 문간에 데려다 주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손길이 도와주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잣집 문간에서 부자의 자비를 바라보고 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희망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만큼 부자는 빈자에 대하여 무관심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들의 풍습에 따르면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식사가 끝나면 손을 씻는데 빵으로 손을 문질러 씻었다(대목120 참고). 그리고는 그 부스러기를 던졌다. 우리의 거지는 그것을 얻어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의 식탁에서 던져지는 빵부스러기는 개들의 차지였다(마태 15,27).
우리의 거지가 식탁에서 던져지는 빵 부스러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표현은 부자 주인이 이 거지에게 아무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어떤 사본에는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루카 15,16)라는 말을 덧붙였다.
거지는 빵 부스러기가 던져지면 이것을 주워 먹으려는 개들과 경쟁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설상가상으로 개들이 자기 몸의 헌데를 핥는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은 거지가 말할 수 없이 비참하였다는 것을 묘사하는 가난의 고통이라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도 다른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를 찬양하고 부자를 지탄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비유에서는 하느님을 무시한 호화 생활자와 하느님의 손길을 받는 가난한 생활자는 현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내세생활에서는 그 운명이 바뀐다는 교훈을 주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자는 하느님의 땅을 소작하는 소작인이며(레위 25,23)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고,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줌으로써”(이사야 58,7) 하느님께 소작료를 무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에서는 무자비한 부자는 고통을 받고 세상에서 고통을 받으며 하느님을 쳐다보던 가난한 사람은 위로를 받게 된다. 이 운명의 뒤바뀜은 부자로 죽고 빈자로 죽는다는 평등한 죽음사실에서 시작된다.
먼저 불쌍한 라자로가 죽었다. 그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예수 이전 시대에 유대하인들의 종교적 전통은 의인들은 죽어서 성조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고 믿고 있었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는 표현은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를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는다는 뜻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며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시었다는 표현과 같다(요한 1,18). 이 개념은 예수의 설교에서 천상 잔치에서 아브라함의 오른쪽에 앉아 사랑을 받는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요한 13,23).
이 잔치에서 의인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자리를 함께 하는(루카 13,28)기쁨을 누리게 된다. 사실 예수 시대에 잔치자리는 손님들이 왼손으로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워서 음식을 들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오른 쪽에 자리를 잡고 같은 형태로 누웠다면 그는 결국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된 형태가 될 것이다. 성서목록에 들어 있지 않는 마카베오 제4서에도 아브라함이 의로운 순교자를 맞아들이는 이야기가 있다(13,17).
요컨대 아브라함의 품이란 그리스도 이전의 의인들이 가게 되는 안식의 장소이며, 그리스도 이후의 성인들에게 허락되는 아버지의 품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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