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를 패러디한 유고슬라비아의 현대소설 「기적이 시간」이 번역, 출판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 소설이 지나치게 복음을 인간화시켰다는 지적과 함께 복음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어 문제시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유고 세르비아계 작가 보리슬라프 페치치의 이 작품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적과 죽음의 사건을 인간의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현재 문학과 미술, 영화 등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기법인 패러디는 기존 텍스트를 뒤틀어서 반복함으로써 그에 대한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기적의 시간」은 텍스트중의 텍스트, 대문자 텍스트로 불리는 성경을 패러디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패러디 문학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기적을 패러디한 ‘기적의 시간’과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패러디한 ‘죽음의 시간’의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는 기적은 은사를 받은 인간의 입장에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적이 저주로 변하는 가장 극적인 모습은 베다니아 사람 라자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누이의 청에 따라 예수 일행을 재워준 죄로 사두가이파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한 그는 예수의 부활기적 덕분에 나흘 만에 무덤에서 걸어나온다. 그러나 다시 사두가이파에게 붙들려가 죽임을 당한 그를 역시 예수가 부활시킴으로써 또 다시 사두가이파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이 ‘기적의 희생자’는 머슴에게 부탁해 자신을 화장시켜서 다시는 죽임과 되살림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파와 사두가이파의 대결의 틈바구니에 끼여 희생당한 라자로를 두고 그의 머슴은 ‘저 위대한 순교자, 베다니아 사람 라자로’라고 칭하거니와 그의 순교는 그리스도파도 사두가이파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의사대로 살다가 죽을 권리를 위한 순교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반(반)복음주의 소설로 읽게 만드는 요소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서 의심받는 것은 예수의 구원 약속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거창한 약속이며 거기에 정치적 복음 역시 포함된다.
제2부 ‘죽음의 시간’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중심으로 도그마로 변한 복음주의의 위험을 고발한다. 유다를 주인공으로 한 ‘유다복음’이라할 이 부분에서 예수는 죽음의 공포에 떠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유다는 예언서의 마지막 한 구절까지도 글자 그대로 실현돼야 한다고 믿음으로써 ‘예언의 노예 유다’라는 별명을 얻는다.
‘예수는 예언의 주체가 아니오, 예수는 예언의 도구일 뿐이오’라고 주장하는 그는 주저하는 예수를 부추겨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하지만, 그 자신도 자신의 성경 해석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자승자박의 처지에 빠진다.
신약성서에 대한 최종적이고도 결정적인 뒤집기는 ‘루카복음’ 23장 26절을 패러디한 ‘골고타의 죽음’이란 장이다. 여기서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며 예수 자신은 흑해 근방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의한 대속과 구원이라는 신약성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이 책은 인간 중심주의의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따라 복음을 지나치게 인간화시켜,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 자칫 종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이에 대해 역자는 “이 소설이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있을지언정 신성을 모독하고 있지는 않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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