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치쁘리아누스의 신학사상들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교회론
치쁘리아누스는 교회를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도구라는 확신 속에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설파한다.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상징들 즉 ‘그리스도의 정배(淨配)’, ‘어머니’, ‘노아의 배’ 등을 통하여 교회의 신비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저버리는 사람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상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방인이고 속된 자이며 원수입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 밖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가 목숨을 구할 수 없었듯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역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교회일치 6장). 이러한 교회는, 마치 많은 밀알이 모여 성체를 이루는 하나의 빵이 되듯이 일치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회를 분열시키고 갈라놓는 이단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의 일치를 보증해 주는 이는 주교이다. 주교들은 사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에게서 권한을 맡았기 때문에, 주교와 교회와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주교는 반드시 교회 안에 있어야 하며, 교회도 주교와 더불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주교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은 곧 교회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처럼 주교는 교회의 볼 수 있는 표징이며 일치와 권위의 상징이다.
로마 수위권
로마교회의 수위권을 가장 잘 설명한 대목은 「교회일치」 4장의 ‘베드로 수위권 사본’이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이 주님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모든 사도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셨지만, 당신 권위로 일치의 기원과 이치를 제정하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다른 사도들과 같은 사도였지만 베드로에게 수위권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하나의 교회, 하나의 교좌가 드러나기 위함입니다. 사도가 모두 목자이지만 한마음으로 사목하기 위해 그 양떼는 하나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이 일치를 견지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신앙을 보존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베드로의 교좌 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교좌로부터 떠나 있는 자가 어떻게 교회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주교권은 하나이며 각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부분을 통해 전체에 동참하게 됩니다.” 한편 치쁘리아누스는 주교의 독자권을 강조한 대표적인 교부인데, 특히 이단자들의 세례문제로 로마교회와 대립할 때 이를 강조하였다. 그의 고민은, 지역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이 로마교회의 전통과 대립될 때 어디에 우선권이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의 기본 입장은, “주교들의 일치는 베드로의 교좌이며 으뜸 교회인 로마교회에서 나온다”(서간 59,14)는 말에 잘 요약되어 있다.
세례성사
떼르뚤리아누스는 유아세례를 반대하여 철이 들 때에 세례를 주라고 하였지만 치쁘리아누스는 유아들에게 가급적 빨리 세례를 주라고 강조한다. 또 유대인의 할례 관습에 따라 출생 후 8일째 되는 날에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세례는 아담의 후예로서 누구나 짊어지게 되어 있는 원죄와, 본인이 지은 죄까지 모두 사함을 받는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에 날짜에 좌우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또 그는 물로 받는 세례(水洗) 외에 순교를 통해 받는 피의 세례(血洗)에 대해 말하는데, 루카 12,50을 ‘혈세’의 성서적 근거로 제시한다. 순교는 은총의 고귀한 세례, 높은 능력의 세례, 영예로 충만한 세례, 천사가 집전한 세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가장 의합한 세례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못한 예비자라도 순교하면 바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신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세상 종말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순교자는 즉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은 믿음의 완성인 세례 즉, 피의 세례를 받고 나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체성사
치쁘리아누스는 서간 63에서 성체성사에 대해 심도있게 설명한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최후만찬과 십자가 제사를 반복하고 재현하는 행위라 설파하면서, 제헌(祭獻)과 제사(祭祀)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 첫 사제이시다. 치쁘리아누스는 특히 성체가 지닌 일치의 의미 즉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 맺어지는 일치성을 역설하는데, 많은 밀알이 모여 하나의 빵을 이루듯이 그리스도의 여러 지체들인 신도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이룬다는 것이다. 성찬전례 때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도 바로 이 일치를 나타내는 표징이다. 그리고 그는 순교자들의 순교일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미사를 지내도록 권하며(서간 39,3:12,2),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서간 1,2), 이것은 오늘의 ‘연령을 위한 미사’에 대한 중요한 사료가 된다. 한편 그는 세례의 경우에서도 그러하듯이, 교회 밖에서는 어떠한 성찬전례도 의미가 없으며 무효하다고 선언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