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8월 초, 우리 가족은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군산에 갔다. 열차는 익숙한 시골 풍경을 계속 지나치며 역마다 서고 있었다.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열차 대신에 왜 이렇게 느린 열차를 선택했는지 아이들과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가족과 함께 ‘철커덕 철커덕’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창밖의 풍경을 보고 싶어 했다. 아이들과 나는 창밖의 모든 풍경이 다 똑같아 보였다. 군산을 가는 3시간 내내 우리들은 묻고 또 물었다. “언제쯤 도착해요?”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도착한 군산은 일제식민 치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장미동에 남아있는 호남관세박물관(구 군산세관)은 1908년에 지어졌다. 유럽 양식을 따라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지은 이 건물은 근대 일본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장미(藏米)동이라는 이름도 쌀 창고가 있던 곳이라는 뜻으로, 호남 들녘에서 걷어 들인 쌀을 수탈해 갔던 역사를 알려주었다.
신흥동에 있는 일본식 주택 ‘히로쓰가옥’도 둘러보았다. 일본식 건축물이지만 한국의 특성도 갖고 있었다. 높은 천장, 2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 복도, 정원 등이 아기자기했다. 이 집에서 나오니 한여름의 태양은 더 이글거리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서 계속 걸었다가는 일나겠다 싶어 근처 편의점에서 잠시 쉬는 ‘편의점표 피서’를 했다. 기운을 차려 다시 일본식 절인 ‘동국사’에도 가보았다. 절 뒤편에는 유난히 잎이 무성한 대나무가 시원스레 숲을 이루고 있었다. 군산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유명한 빵집에도 들렀다. 후한 남도의 인심만큼이나 큼지막한 그릇에 넉넉하게 팥을 넣은 시원한 팥빙수가 나왔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걸어 다니며 둘러보고, 역마다 서는 열차를 타고 갔던 군산 여행의 추억이 아련하다. 초록의 들판, 손에 닿을 거 같던 시골집 마루,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섰던 농부 아저씨의 주름살에 이르기까지. 내가 보았던 모든 것에는 하느님의 숨결이 스며있었다. 하느님은 내가 그 숨결을 발견하고 기뻐하기를 바라시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빠르고 편리한 것 대신, 가끔은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세상을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도 하느님은 눈길과 마음을 두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모든 곳에 당신의 신비를 숨겨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