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렇게 오래 살게 한 하느님의 뜻이 있었구나 싶었지. 그저 감사해. 감사합니다.”
8월 25일 서울 행당동성당에서 만난 이금섬(마리아 막달레나·92·서울 행당동본당) 할머니는 지난 8월 20일 남북 이산가족상봉 방문단의 일원으로 금강산을 찾아 북녘의 아들을 만났다. 1950년, 피난길에 헤어진 지 68년 만이다. 네 살배기 아이였던 아들은 어느새 71세의 노인이 돼 있었다. “너무 늙었더라고. 아기를 잃어버렸는데 할아버지가 나왔어.”
함경남도에 살던 이 할머니는 1950년 여름, 몰려드는 피난 행렬에 뒤늦게 합류했다. 이 할머니의 등 뒤에는 갓 태어난 딸이 업혀 있었고, 네 살배기 아들은 남편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딸이 배고파 칭얼대자 이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아이 젖을 먹일 테니 남편과 아들은 잠시 쉬고 있으라 일렀다. 붐비는 길을 피해 젖을 먹이고 돌아왔을 때 남편과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 가족들을 찾지 못한 이 할머니는 갓난아기 딸과 단 둘이 피난길에 올랐다. 스물넷의 새댁은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열 명의 자녀와 수많은 손자 손녀를 본 아흔둘의 할머니가 됐다.
“남편도 내 형제들도 다 죽었다고 하더라고. 나는 여기서 자녀들이 많지만 아들은 혼자니까 그게 마음이 아팠어.”
이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며느리가 함께 상봉하러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아들에게 줄 약과 외투와 함께 손자며느리에게 선물할 묵주 팔찌도 여러 개 만들었다. 혹시 문제가 될지 모르니 십자가 장식은 빼고 묵주알로만 채웠다.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했지. 내가 신앙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으니까.”
1960년 자녀들과 모두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이 할머니는 상봉하러 금강산을 다녀온 다음날인 8월 23일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성당을 찾았다고 했다.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어. 이렇게 오래 살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한 번이나마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편치 않은 몸에도 이 할머니는 매일매일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오늘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물어보니 대답했다.
“아들이 ‘엄마 백 살까지만 살아. 그러면 우리 또 만날 수 있겠지’ 하더라고. 내가 죽기 전에 통일이 돼야 할 텐데 말이야.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 나도 잘 알아. 그래도 기도는 해야지.”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