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21회부터 주요교회 학파들의 대표적인 인물들 즉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끌레멘스와 오리게네스, 로마교회의 히뽈리뚜스와 노바씨아누스 그리고 아프리카교회의 떼르뚤리아누스와 치쁘리아누스에 관해 비교적 자세히 살펴보았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중반까지 교회 신학을 주도하였던 위의 교부들은 각 학파의 종적인 연관은 물론 다른 지역교회들과의 횡적인 연관을 긴밀히 맺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 교회신학 발전에 중요한 기초를 놓았던 분들이다. 이제 우리는 3세기 중엽부터 그리스도교의 종교해방(313년) 이전까지 특색 있는 몇 분의 교부들을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살펴보겠다.
성 디오니시우스 교황
초기 로마교회의 주교들은 자기 자신의 신학 저서들을 남긴 경우가 드물지만, 사목자로서 지역 교회를 충실히 관리하고 다스렸으며, 심각한 신학 논쟁이 로마교회 내에서나 다른 지역교회에서 발생하였을 때에는 사도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통교리를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과감히 개입하였다. 당시 로마 주교의 권위는 다른 지역교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으므로, 신학 논쟁이 그들 교회 내에서 해결이 나지 않을 때에는 로마 주교에게 문의하여 그 답을 찾으려 한 경우들이 많았다.
디오니시우스 교황은 3세기의 가장 뛰어난 교황들 중에 한 분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사실 동시대 인물이며 같은 이름을 가진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는 그를 ‘학식 있고 고귀한 성품의 인물’로 칭송하였다. 디오니시우스가 259년에 로마의 주교로 서품되기 이전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에우세비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교회사 7,5,6), 그가 선임자 식스투스 2세 교황하에 사제로 있었을 때에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로부터 이단자들의 세례의 유효성 문제에 관한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사실은 그가 주교서품 이전에 이미 로마 성직자단 안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261년에 갈리에누스 황제가 박해를 종식하면서 발레리아누스 황제 때에 몰수했던 교회의 예배소들을 되돌려주자, 디오니시우스 교황은 로마 공동체를 재정비하고 성직자단을 쇄신할 수 있었다. 그는 로마교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다른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까빠도치아교회를 돕고 포로가 된 신도들을 속량하기 위해 돈을 모아 보내주기도 하였다. 그는 267년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로마의 갈리스뚜스 지하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12월 26일에 지낸다.
두 통의 편지
디오니시우스 교황은 같은 이름을 가진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에게 사벨리우스 이단과 성자 하위론 문제에 관한 두 통의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들을 쓰게 된 경위는 매우 복잡하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가 펜타폴리스(지금의 리비아) 지방에 만연해 있는 사벨리우스 이단을 단죄하는 편지를 그 곳의 암몬 주교와 에우파놀 주교에게 보냈는데, 여기서 그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한편 펜타폴리스 지방의 일부 주교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의 표현에서 성자가 성부 보다 하위에 있다는 성자 하위론과 삼신론(三神論)적 요소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은 편지를 쓴 본인에게 해명을 직접 요구하는 대신 로마의 디오니시우스 교황을 찾아가서 그를 고발하였다. 이러한 고발을 접한 디오니시우스 교황은 262년에 로마 주교회의를 소집하고 성삼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천명함과 동시에 두 통의 편지를 알렉산드리아에 보냈다. 첫째 편지는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에게 보낸 것으로서 고발된 사항에 대해 본인의 해명을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이었고, 둘째 편지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보낸 것으로서 디오니시우스 주교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고,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이 위험한 사상에 빠져있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성삼론 문제는, 삼위(三位)를 나타내는 ‘위격’(位格)과 하나의 천주성을 나타내는 ‘본성’(本性)이라는 용어가 교회 안에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성삼위의 구별을 강조하다 보면 ‘삼신론’(三神論)이 될 수 있고, 하나의 신적 본성을 강조하다 보면 사벨리우스 이단처럼 성부 수난설에 빠질 수 있었다. 이 편지들에서 디오니시우스 교황은 단일신론(單一神論)적 사벨리우스 이단과 성자 하위론 그리고 삼신론을 함께 단죄하였다. 이러한 편지를 받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는 성삼에 관해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은 4권으로 된 ‘반박과 변호’를 답장으로 보내면서, 성자께서 성부와 구별되나 같은 천주성을 지니신 분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디오니시우스 교황과 디오니시우스 주교 사이의 이러한 편지 교환은 아리오 이단과 니체아 공의회(325년) 이전에 이미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성삼론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일치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편 340년 율리우스 1세 교황은 이 편지 교환을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로마교회의 감독의 선례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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