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교구 어농성지 십자가 동산.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신자들은 순교선조들이 남긴 뜻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순교선조들이 남긴 뜻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박해시대 숨겨진 이야기들」 1·2권
-서양자 지음/각 410·446쪽/도서출판 순교의 맥/각 2012·2016년 발행
서양자 수녀(아가타·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가 교회사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거나 빠진 부분, 관심 밖에 밀려 있던 사건들을 조사해 저술했다.
잘 알려지지 않아 숨겨져 왔던 박해시대 교우촌 생활을 눈앞에서 보듯 재현하고 있다.
서 수녀는 자료조사를 위해 서울대교구 내 성지와 신자들의 삶터를 수년간 탐방하고, 생존한 노인들의 증언 등을 수합했다. 서소문 밖 사형장과 칠패시장, 박해시대 중국과 조선의 외국인 사제들이 특이한 용모를 감추기 위해 어떻게 변장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돼 있다.
성 김효임 골룸바와 성 김효주 아녜스 자매의 고향이 밤섬이라는 것을 밝힌 기록도 있다. 경복궁 공사장에서 품을 팔다가 치명한 교우들, 순교자들이 감옥에서 받는 사별상(死別床), 우리나라 세시풍속과 천주교, 서울 각 지역 생활 특징과 당시 의복 등 다양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누이여 천국에서 만나자」
-노순자 지음/312쪽/성바오로/1991년 발행
전라도 부호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 요한과 양반가문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 혈연과 신앙을 내용으로 하는 순교소설이다. 2012년 소설집 「기억의 향기」로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한 노순자(젬마) 소설가의 작품이다.
유중철·이순이 부부의 일대기는 단지 부부가 동정을 지키며 살았다는 것보다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로서 동정을 믿음의 증거로 삼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부부의 삶을 감성적으로 꾸며, 혼인은 피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 동정을 봉헌하고 싶은 순수한 열정을 시대상 안에서 조명한다.
노 작가는 이들 부부에 대해 집터와 치명자산 무덤, 두 통의 서찰 등 기본 뼈대 외에는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많은 부분이 창작임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들 부부에 대한 흠모 속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완성했다.
■「순교자의 길을 따라」 전3권
-한수산 지음/각 352·315·296쪽/생활성서/2009년 발행
10년 간 순교성인들의 흔적을 찾아 국내 곳곳을 누볐던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 소설가의 성지순례기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가톨릭 월간지 「생활성서」에 연재했던 내용을 단행본 세 권으로 엮었다.
한 작가는 1980년대 당시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은 필화사건으로 한동안 일본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1989년 성 라자로 마을 이경재 신부(1926~1998)와 함께 백두산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세례를 받았다.
한 작가는 이후 한국 천주교 박해사를 소설로 옮기겠다고 결심하고 매달 순교자 1명을 찾는 순례에 나섰다. 이렇게 10년 남짓 기간 103회를 연재했다. 이 책은 백과사전식 성지순례 안내서와는 달리 순교자들의 발길을 따라 걸어온 이야기를 수필 형태로 풀었다.
경기·서울, 충청·강원, 전라·경상·제주 등 권역별로 나눈 성지 소개와 성인들의 삶, 그리고 구구절절한 개인사가 읽기 쉽게 서술돼 있다.
■「덕원의 순교자들」
요한네스 마르 지음/이종한 옮김/574쪽/분도출판사/2012년 발행
북녘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느님을 증거하던 사제와 수도자들이 6·25를 전후해 공
산주의자들 손에 적잖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 성 베네딕도회 덕원·연길수도원과 원산수녀원의 수도자들, 함흥·연길대목구 사제 등 38명(한국인 사제·수도자 13명)도 포함됐다.
「덕원의 순교자들」은 한국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속한 오틸리아 연합회의 역사 고문 요한네스 마르 박사가 당시 사료들을 총망라해 38명 순교자들 삶과 죽음의 기록을 한데 모아 정리했다.
2007년 5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덕원의 순교자들 38위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하고, 현재 교황청 시성성에 심사 자료를 제출한 상태다. 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정치·사회적 혼란, 6·25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며, 그들의 순교는 한민족의 비극과 별개가 아니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