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2역대 24,18-22)에서 즈가리야를 돌로 쳐죽인 요아스왕은 본래 즈가리야의 부모로부터 큰 은덕을 입은 자였습니다. 왕이었던 요아스의 아버지가 죽자 할머니 아달리아가 왕권을 쥐기 위해 왕자들인 손자들을 모조리 죽일 때 즈가리야의 어머니가 어린 요아스를 빼내어 숨겨뒀기 때문에 그만은 홀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즈가리야의 아버지가 주동이 되어 부당하게 왕권을 쥔 그 할머니를 몰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앉혔습니다. 그러니까 요아스에게는 즈가리야의 부모가 생명의 은인이요 왕권의 은인이었습니다.
즈가리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살았을 때는 요아스가 정치를 잘했습니다. 특히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바르게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간신들의 꾐에 넘어가 어이없게도 우상을 섬기는 왕이 되었고 이에 즈가리야가 나서서 잘못을 지적하고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간청하자 요아스는 그 은덕을 잊어버리고 즈가리야를 돌로 쳐죽였던 것입니다. 이에 즈가리야가 말했습니다. “야훼께서 굽어보시고 갚으시리라”
맞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굽어보십니다. 세상은 속여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지급 당장은 법을 어기고 남을 속여서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하느님은 다 굽어보시고 그 부당함을 문책하실 것입니다. 또한 선하고 의롭게 살았던 신앙의 결과가 박해와 죽음으로 끝장을 맺었다 해도 그는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다 굽어보시고 백 배, 천 배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그분은 실로 한국 천주교회의 횃불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큰 자랑이 될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문초하던 관리들까지도 그의 죽음을 아깝게 여겨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스물다섯이라는 꽃다운 청춘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첫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맏물인 그를 하느님은 제물로서 원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땐 안타까운 면도 있습니다. 김대건 소년이 9년이라는 고생 끝에 어렵게 신부가 되었고 또 한국인 신부가 절실하게 필요하던 그 시기에 왜 신부님을 일찍 데려가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서품된 지 1년 만에 처형당하신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더 먼 미래에 계셨습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전교가 잘되고 신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는 나라도 없으며 또 우리나라만큼 수녀원에 지원자들이 줄지어서고 있는 나라도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김대건 신부님의 피를 통해서 한국 교회의 기초를 굳건히 하신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한 사람의 피가 전인류를 구원해 주었듯이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피가 우리 교회에 힘을 준 것입니다.
성인 김대건 신부님의 위대한 점은 먼저 그 집안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증조할아버지가 순교하셨고 작은 할아버지가 순교하셨으며 또한 아버지가 순교하셨으니 김대건 신부님까지 무려 4대에 걸쳐서 순교한 순교집안이었습니다. 순교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마치 가보처럼 ‘신앙과 순교’를 대물림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너무도 훌륭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순교 선조들의 피가 우리 가운데 흐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우며 김대건 신부님의 피가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 가슴 안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영광을 자랑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도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꼭 갚아 주신다는 믿음의 전제아래 오늘의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을 보다 새롭게 바라봐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셔야 할 일을 우리는 세속에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세상이 당장 갚아주지 않는다고 신앙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 우리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진정으로 요청되고 있는 것은 ‘잘난 사람’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사람을 통해 하느님은 큰 역사를 하십니다.
“야훼께서 굽어보시고 갚으시리라”이 말씀은 우리 신앙인만이 간직할 수 있는 삶의 에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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