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연하게 한 말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제 친구 중에 누가 상처를 하면 “그 사람 장가 두 번 가서 좋겠다”라고 뚱딴지같은 농담을 잘하더니 정말 자기 부인도 마흔 살에 죽어서 그 친구도 장가를 두 번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또는 죽어가는 사람을 벌떡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찮은 사람의 말에도 이처럼 큰 위력이 있다면 하느님의 말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분이 한번 하신 말씀은 헛되게 무너지지 않으며 기필코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이 하느님의 힘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바로 그 내용이 나옵니다.
바빌론에서 50년 이상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유대인들은 폐허가 된 도시와 무너진 성전 앞에서 깊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도저히 다시 회복할 수 없고 다시 일으킬 수 없는 암담하고도 담담한 현실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예언자 이사야가 나타나서 하느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그때 하느님의 약속은 새 예루살렘을 일으켜 주시는 것이고 번영과 자유가 있는 새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비는 땅에 내려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빗방울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꼭 땅을 적시고 만물에 생기를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꼭 그렇습니다. 말씀은 특히 메마른 인생, 실패한 인생, 시련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비로 적셔 주십니다. 성서의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구절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로 빵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하나의 씨와 같아서 밭이 나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바로 이에 대한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가 아무리 위대하고 훌륭하다 해도 그 씨를 받아서 싹을 틔우는 땅이 나쁘면 헛수고가 됩니다. 마치 농부가 땅을 쟁기로 갈고 거름을 주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 마음을 깊이 파서 깨뜨리고 양분을 주어야만이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모 본당에서 피정지도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 회장님이 딴 일만 하고 강론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안 듣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안 들어도 다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 여쭤 봤더니 “저 분은 본래 입만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돌밭인 사람은 앞에서 설교를 해도 말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한번은 주일미사 강론을 할 때 책을 덮으라고 해놓고 오늘 제1독서에서 무슨 말씀이 있었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아는 사람이 꼭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씨를 뿌려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가시덤불만 무성해 있으니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듣고 또 들어도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어서 들을 때마다 은혜가 다르고 축복이 다릅니다. 들을수록 그 의미가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 안다고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음식은 먹을수록 맛을 알고 고기는 씹을수록 맛을 깊이 느끼는 것과도 같습니다.
둘째는 마음을 쟁기로 깊이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리고 덩어리를 깨뜨려야 합니다. 마음이 딱딱하면 말씀을 받아내지 못하고 튕겨냅니다. 마음이 온통 쓰레기로 꽉 차 있으니 보물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깊은 성찰을 통한 진실한 회개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기도가 될 수 없으며 하느님 말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셋째는 하느님의 말씀을 진실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필요 없고 속된 말의 홍수 속에 자신을 가둬놓고 있습니다. 쓸데없고 허무한 것엔 너무도 집착해 있으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등한히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책이 많고 좋은 말이 많아도 하느님의 말씀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힘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보람찬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포도밭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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