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7,20-21)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에 대한 관심은 예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사 중의 관심사였고 거의 민족적인 관심사였다. 그들은 다윗의 왕권이 메시아라는 기대호칭으로 꼭 재건되리라는 예언이 성서에서 다짐되었고 또 그 약속을 굳이 믿고 있었다. 다만 그 왕국이 언제 재건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예수 당시 외세의 침략을 받아 정치적으로 신음하는 처지였으니 그 기대는 더욱 간절하였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남북의 통일을 바라는 민족적인 염원보다 훨씬 강도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 예언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예언이 세속적인 모양으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었다.
가령 자기네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대로 어떤 정복왕이 민족 안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외세를 무력으로 물리치고 보무도 당당히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민족적 영웅을 기다렸다. 이러한 민족해방자는 하느님의 약속으로 파견된 사람이기 때문에 미리 그 징표가 하늘과 땅에 나타날 것이라는 신념에 차 있었다.
이러한 사상에 젖어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께 “하느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오느냐”고 따져 물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초창기 교회시대의 신도들에게 적지 않은 관심거리가 되어 있었다. 복음서가 교회창립시대의 교리서였다는 것은 공관 3복음서가 하느님 나라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루가 복음서는 하느님 나라라는 말을 31번 사용하고 있고, 마르코는 14번 사용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3번(12,28:19, 24:19,31)만 나오지만 마태오 복음서 전체가 하느님 나라가 전해지고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세상 마칠 때에 완성되는 모습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복음서는 하느님 나라는 세속적으로 굉장한 팡파르와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적으로 온다는 것을 누누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르친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대목은 그들의 왜곡된 세속적인 기대를 고쳐주는 예수님의 대답으로 시작된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다. 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하느님 나라는 혜성이 나타나듯 그렇게 보려고 하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세상에서 경험하듯 어떤 정치적 격동을 겪고 탄생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의 변혁을 일으키며 그 옆에 이미 다가와 있다.
하느님 나라는 개선장군처럼 하늘에서 나타나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처럼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동안 죄인이 회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어두움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찾아가고, 불쌍한 사람들이 기쁜 소식을 듣고 하며 사회가 변혁될 때 겸허한 자세로 다가온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공적으로 나타나셔서 복음을 전할 때 “때가 되어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 모두 회개하고 나의 복음을 믿으라”라고 제 일성을 외쳤다(마르 1,14:마태 4,12). 그리고 ‘갇힌 이가 풀려나고 눈먼 이가 보게 되고 억눌린 이가 자유를 누리는 은총의 해를 선포하셨다’(루카 4,18).
이것이 하느님 나라가 온 표라면 표이다. 그러니 죄인이 용서받고 빼앗겼던 자유가 되돌려지고 해방을 얻게 된 마당에 누구나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번역하기에 따라 ‘너희 마음속에 와 있다’ ‘너희 가운데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갈릴래아에서 시작한 하느님 나라 선포는 지금 그 전도여행의 막판에 이르러 또 다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일깨워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등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소란스럽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들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예수 자신을 보고 알아 차려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들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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