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 잠에서 깨어 가만히 나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이 죄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신 주님의 은총과 자비에 대한 감사의 정념으로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만히 기도합니다”
1987년 7월, 기도 중 뇌출혈로 쓰러진 최영무(야고보·서울 신정동본당·54세)씨는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멀쩡했던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인이 돼, 어둡고 깜깜한 세월을 헤쳐 오면서 최씨가 느꼈던 것은 “하느님은 고통 중에서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분”이라는 것.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의 기도와 병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새벽미사에 참례하는 최씨는 해가 있는 한 멀리는 인천 송도까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병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말벗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매일 부인 박경자(체칠리아)씨가 손에 쥐어주는 2천원을 들고 불편한 몸으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산동네 판잣집에서 장애인들을 만나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최씨의 모습은 주위사람들에게 때로는 시기와 질투로 또 한편으론 위로의 표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경남 충무에서 태어난 최영무씨는 그 어려운 시기에도 부산대학을 다니며 청춘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던 그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지를 못 쓰게 된 장애인이 됐을 때는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교회마저 등지게 됐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생활성서사에서 나온 「주여 왜!」란 책을 통해 고통 중에서 참사랑을 발견하는 욥의 모습을 접했고, 그날 이후 내 앞에는 다른 삶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가 만든 것이 자신이 단장으로 있는 신정동(주임 이재돈 신부)본당 ‘병자의 모후 쁘레시디움’이다. 11명의 이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자신들도 장애인이면서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찾아 나서 그들의 벗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자 이충진(토마스), 부단장 김홍식(베네딕또)씨와 함께 2주일에 한 번씩 신월동 본당에서 나오는 생수를 길어 장애인들에게 배달해 주고 있는 최씨는 “보잘 것 없는 물이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아주 큰 기쁨이 된다”며 “이를 통해 기뻐하는 이들을 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며 활짝 웃는다.
이런 최씨에게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같은 레지오 단원인 이철석(로무알도)씨가 신장기증만 받으면 수술을 해 정상인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증받기가 어려운 현실을 보며 최씨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내 신장이라도 당장 주고 싶지만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불가능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는 최씨는 “사랑을 나누고 살아야 하는 우리 신자 중 누가 좀 나서 로무알도 형제에게 생명을 주었으면 하는 게 최대의 소원”이라고 강조한다. 오로지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위한 일념으로 오늘도 언덕길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 최씨의 두 어깨에 환하게 웃는 예수님의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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