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도대체 어디서 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세상에 악이 득실거리며 판을 치고 있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악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한마디로 모릅니다. 악이라는 존재의 근원은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존재의 근원은 알수도 없는 것이 하느님의 반대 세력으로 등장해서 인간을 망치고 세상을 망칩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악의 존재를 신비로 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악의 존재를 말씀하셨습니다. 악은 영원히 제거되어야 할 하느님의 반대 세력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느님 나라의 튼튼한 성장과 인간 선의 순수한 발전을 위해서 악이 도구로 이용될 때도 있습니다.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가라지는 밀밭에 자라는 억센 잡초를 말합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밀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경험 많은 농부들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크게 자라고 나면 밀과는 엄연히 달라서 어린이라도 구별할 수 있지만, 그때는 가라지가 밀의 뿌리를 덮고 있어서 뽑고 싶어도 뽑지를 못합니다. 가라지 때문에 밀이 뽑혀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선과 너무도 흡사해서 경험 많은 사람들도 잘 속습니다. 심하게는 성직자나 수도자들 까지도 쉽게 속아 죄에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악은 항상 선으로 위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성급히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혼자 사는 어떤 마담이 있었는데 억척스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잖은 신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의 바르고 여자를 존경할 줄 아는 신사요 인격자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마담도 믿었고 주위에서도 인정을 해서 모든 것을 의탁했습니다. 그러나 마담은 결국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기꾼이었던 것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너무도 교묘해서 얼른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마귀라는 것이 실상은 천사가 타락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럴듯하며 믿음직스럽고 진실된 선으로 자신을 감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되며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악의 정체는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악으로 판명되었다 해서 서둘리 급하게 제거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밥사발 위에 파리가 앉았다 해서 밥사발을 파리채로 때려서는 안 됩니다. 다리에 종기가 났다 해서 다리를 칼로 잘라서도 안 됩니다. 괴로와도 참아야 하며 억울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악을 잘못 제거하려다가는 오히려 선이 크게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큰 죄를 짓는다 해도 하느님께선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악이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선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오늘의 가라지가 내일엔 밀로 변할 수 없지만 오늘의 가라지 같은 인생은 내일엔 밀과 같은 인생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그랬고 성인 아우구스티노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기다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작정 끝없이 기다리시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선 악의 회개를 기다리시면서 동시에 악을 심판하실 마지막 날을 기다리십니다. 세상엔 파렴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온갖 악의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 그들의 세력을 당신의 권능으로 일시에 제거치 않는 것은 그들의 참다운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심판은 오직 하느님의 것입니다. 악을 우리가 악으로 갚으려 해서도 안 되며 지금 당장 선이 보상을 못 받는다 해도 서운해 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은 꼭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날은 꼭 있습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앙인에게 가장 큰 도전이요 위협입니다. 그러나 악의 도전이 없다면 인간의 성장과 세상의 발전은 굉장히 둔화됐을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이 풍성하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박해시대에 많은 순교 성인들이 나오며 어려운 시기에 영웅이 나오는 것도 그 이치입니다. 이처럼 악은 나쁘지만 악의 존재는 인간의 선을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악에서 선을 일으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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