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팜필루스(Pamphilus)는 열렬한 오리게네스 추종자였으며, 또한 교회사 분야에 대가(大家)인 에우세비우스의 스승이었다. 사실 에우세비우스는 스스로 ‘팜필루스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에게서 학문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팜필루스에 관한 전기는 팜필루스의 순교 후에 그의 스승이었던 삐에리우스가 쓴 것으로 상실되었고, 둘째 전기는 그의 제자 에우세비우스가 쓴 것으로서 역시 상실되었다. 그러나 에우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에 그에 관한 단편적인 내용이 전해오고 있다. “그 당시 우리는 언변에 뛰어나고 학자로 생활하고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영예에 오른 팜필루스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어떤 가문, 어느 지방의 출신이었는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이런 문제들을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저서에서 그의 생활의 요소들에 대해, 그가 설립한 학교에 대해, 박해 동안 여러 형태의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견지했던 영적 투쟁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식했던 순교의 월계관에 대해 일일이 서술한 바 있다. 이분은 참으로 우리 도시에서 가장 칭송받을 만한 분이었다”(교회사 7,32,25).
팜필루스는 베리투스(지금의 베이루트)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서 소년기의 교육을 받은 다음,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그곳의 교리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였다. 마침 이 교리학교에는 오리게네스의 제자였으며, 재능 면에서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제2의 오리게네스’라 불리던 삐에리우스가 281년부터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 신학을 심도 있게 들을 수 있었고 이에 심취하였다. 그 후 그는 팔레스티나의 체사리아에 와서 290년에 아가삐우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오리게네스가 세웠던 교리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체사리아 학파를 굳건히 하였다. 체사리아에는 오리게네스가 설립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과 다른 교회저술가들의 저서들을 수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손수 베껴 씀으로써 도서관의 장서들을 풍부히 하였다. 이러한 그의 피나는 노력 덕택에 수많은 귀한 문헌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는 막씨미우스 다이아 황제 박해 때인 307년 11월경에 투옥되어 많은 고문과 심문을 받은 다음 309년 2월16일에 참수됨으로써 순교하였다, 에우세비우스는 팜필루스의 공적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순교자 팜필루스의 전기에서 이미 기록한 바 있다. 거기서 우리는 팜필루스가 지녔던 하느님의 일에 대한 열정을 언급하면서, 그가 수집하였던 오리게네스와 다른 교회저술가들의 저서 목록들을 수록하였다. 이 저서 목록들 덕택에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에게까지 전해오는 오리게네스의 저서들을 매우 충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교회사 6,32,3). 교회는 그의 축일을 6월 1일에 지낸다.
저서
「오리게네스 옹호론」:팜필루스는 투옥기간 중에 5권으로 된 오리게네스를 위한 옹호론을 그의 제자 에우세비우스의 도움을 받아 희랍어로 저술하였는데, 그의 사후에 에우세비우스가 제6권을 써서 이를 보완하였다. 그런데 희랍어 원본은 상실되었고, 루피누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제1권만이 전해오고 있다.
이 옹호론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광산에서 강제노동의 형벌을 선고받은 신자들을 위해 써진 것인데, 이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빠텔무티오스였으며, 팜필루스의 순교 후에 그도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팔레스티나의 많은 증거자들은 오리게네스의 저서를 옳게 읽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의 신학을 오해한 나머지 그를 적대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팜필루스와 에우세비우스는 스승 오리게네스의 저서들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그들의 오해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오리게네스 신학의 정통성을 입증하려 하였다.
이에 앞서 팜필루스는 한 편지에서, 오리게네스의 저서에 몇 가지 무리한 표현들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의 모범적인 생활과 그가 고백한 가톨릭적 신앙을 보아서 그를 이단자로 볼 수는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성서 필사본」:팜필루스는 제자 에우세비우스와 함께 오리게네스가 만들었던 「헥사쁠라」(구약성서 본문비판서)의 오자(誤字)를 수정한 다음 이를 많이 베껴 써서 팔레스티나는 물론 소아시아 전역에 널리 보급시켰다. 오리게네스의 「헥사쁠라」(가톨릭신문, 교부학 24, 1993·2·28참조)는 구약성서의 6개 사본을 6개 란(欄)으로 배열하여 서로 비교 연구한 「성서본문 비판본」으로서 일생의 역작이었다. 팜필루스는 특히 다섯째란의 ‘70인역’을 토대로 엄격한 본문 비판을 하여 이를 사방에 널리 보급시켰다. 사실 인쇄술이 개발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모든 문헌이 수사본(手寫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팜필루스와 에우세비우스의 이러한 노력은 성서의 정확한 본문을 확립하고 성서를 보급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또한 그들은 본문 비판의 정신을 가지고 신약성서의 보급에도 노력했었는데, 오늘날 성서연구에 사용되는 많은 사본들은 그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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