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여행을 시작할 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차표를 준비하고 여행을 떠나게 마련이다.
다행히 차표를 구한 사람들은 느긋하게 차시간을 기다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차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에 떤다. 뭔가에 의지하고 기대고 싶어진다.
바로 이런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찾아가 마지막 여행에 필요한 차표를 끊어주는 사람, 서울 반포본당 이민하(베로니카, 53세)씨는 오늘도 마지막 한 장의 차표라도 더 끊어주기 위해 가톨릭의과대학 강남성모병원(원장 김인철 교수)을 찾는다.
췌장암으로 입원했다가 자신이 가르친 교리를 통해 영세하게 된 문학주(바오로·59세) 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공교롭게도 문씨는 이민하씨가 끊어준 1백번째의 차표를 받아놓고 그날만을 기다리는 말기환자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거나 죽음을 거부하는 말기환자들을 영세시켜 편안하고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천국행 기차표를 끊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세례를 받고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2년 전인 지난 81년부터 환자들을 위한 교리교육을 실시, 6월말로 1백번째 영세자를 배출한 이민하씨를 주위에선 사랑의 천사라고 부른다.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찾아와 건강이 회복될 기미가 전혀 없는 환자들만을 맡아 교리를 가르쳐 온 까닭에 이씨가 교리를 가르쳐 영세한 환자 중 98명은 이미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됐다.
그래서 이민하씨는 자신을 통해 영세하고 선종한 사람들을 가리켜 자신이 준비해준 차표를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표현을 쓴다.
“환자들이 처음엔 교리를 거부하다가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을 받아들이고 아주 밝은 표정으로 선종할 때 이 일이 바로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명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민하씨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숨을 거두면서 가족들보다 오히려 신앙을 가르쳐준 자신에게 더 고마워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을 통해 하느님의 참 존재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죽고 또 부활하게 된다”며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이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 했다.
이민하씨는 영세교리 기간을 일정하게 잡지 않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수시로 변경하며 교리를 가르친다.
어려운 암기보다는 환자가 가장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문답식 교리법으로 교리교육을 가르치는 이민하씨는 강남성모병원 원목신부인 최창화 신부 주례로 세례성사를 수시로 베풀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민하씨는 말기환자들에게 단순한 교리뿐 아니라 문학소녀를 꿈꾸며 읽었던 독서를 바탕으로 환자들과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생활 속의 체험을 들려주며 환자들의 가슴속에 신앙의 싹을 틔워 왔다.
무엇보다도 이씨는 남편의 사업이 실패, 부채 때문에 도망을 다닐 때도 말기환자들을 위한 교리시간에는 어김없이 병원을 찾아와 살아있는 신앙의 힘을 생생히 전달, 환자들의 위안이 되곤 했었다.
“교리를 배워 세례 받고 선종한 영혼들이 돕는지 이젠 남편 사업도 제자리를 찾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착하게 좋은 대학을 다 나올 수 있었어요”
어떤 때는 꿈속에서 자신이 마련해준 차표를 가지고 천국으로 떠난 영혼의 꽃들이 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는 이민하씨. 이씨는 오늘도 묵주를 돌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남성모병원으로 향한다. 또 다른 천국행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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