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들고 여름휴가를 떠나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말부터 8월초. 동해 푸른 바다와 깊은 산골 계곡을 찾아 피서를 떠나려는 사람들의 배낭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꼽혀 있어 여름휴가의 새로운 풍속도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을 주제로 영화가 대히트를 치는 등 한 여름 극장가에 사람이 몰리는 것에 편승 이미 영화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우리의 전통가락과 예인정신을 다룬 이청준씨의 ‘서편제’(열림원)와 마이클 크라이튼이 공룡을 주제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는 SF소설 「쥬라기공원」(김영사)등이 서점가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어 화제.
직장인서부터 주부, 학생 등 그 독자층이 다양하고 넓은 이 책들은 올 여름 휴가를 떠나려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면서 피서지에서의 독서풍경을 연출하는 진귀한 현상을 예견하고 있다.
이처럼 범사회적으로 무더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려는 의욕들이 넘치는 가운데 가톨릭 신자들도 이번 휴가철을 기점으로 평소에 잘 접하지 못했던 교회관계 서적을 한 권 정도씩은 읽어야 한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다.
개신교 신자들보다 성서를 덜 보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휴가철을 맞아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을 수 있는 성인전이나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한국 교회사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바람직하겠다.
H상사에 다니는 강길웅(라우렌시오·29세)씨는 “무더운 여름 남들이 다가는 휴가를 떠나고 싶지만 휴가지에서의 스트레스도 무시 못 한다”고 전제하면서 “올 여름은 집에서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 읽은 성인전을 읽을 계획”이라고 밝혀 알뜰, 실속 피서법을 소개했다.
한편 도서출판 ‘일과 놀이’에서 펴낸 남미 선교사제의 가슴 찡한 체험담을 소개하는 「모자란」(로젤리오 폰셀리의 지음·기춘 옮김)이 특히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 책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던 한 사제가 정치권력과 군대에 의한 엄청난 폭력 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얼마나 자신의 존재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그린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고려원)가 저자 석용산 스님이 KBS 2TV 조영남 토크쇼에 출연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원로작가 박경리씨가 쓴 「김약국의 딸들」(나남), 이나미씨의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문학사상사), 노동자 시인 박노해씨의 시집 「참된 시작」 등이 휴가를 가려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휴가풍속이 책과 함께 하는 휴가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93 책의 해’를 지내면서 책을 벗 삼아 피서를 즐기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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