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경갑룡 주교)는 7월29일 국내에 체류 중인 불법취업 외국인 근로자들의 실태에 관한 자료집 발간과 아울러 성명서를 발표, 한국정부 및 국민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평위의 이번 자료집은 1백여 쪽 분량으로 △정부의 외국인력 수입정책 △외국인 노동자 실태조사 등에 관한 보고서와 설문결과 및 관련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자료집에 의하면 1993년 4월30일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수는 총 6만4천9백68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불법취업 외국인은 대부분 15일 혹은 3개월의 관광 비자를 이용하여 입국한 후 국내업체에 취업하고 체류기간을 넘기는 식으로 지내고 있으며, 이들을 국적별로 보면 중국인은 2만8천5백91명, 필리핀은 1만2천76명, 방글라데시인 8천72명, 네팔인 4천1백66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내국인들이 취업을 기피하여 인력난을 극심하게 겪는 이른바 ‘3D업종’(Dirty, Diffi-cult, Dangerous)에 취업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유흥업소나 식당 종업원, 가정부 등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명동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가 지난 92년 9월1일부터 93년 1월31일까지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 상담사례 보고에 따르면 임금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았고(33.6%), 그 다음이 한국인 고용주들의 구인(15.9%), 외국인 노동자들의 귀국상담(5.6%)과 폭행 사례(3.8%), 구직(3.7%), 산재(3.1%)순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국내 불법취업 외국인들의 문제 중 근로조건(임금, 폭행, 산재)이 가장 큰 문제로 밝혀졌고, 그 다음이 법률상의 문제(귀국, 송금)와 고용문제(구인, 구직)순으로 드러났다.
‘불법취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33만8천9백25원으로 국내 고용인 1백인 미만의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 임금 56만1천5백47원(92년 상반기 기준)에 비해 60.3% 수준에 불과했다.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8시간, 월 평균 노동일수는 26.1일로 나타났다.
임금문제로 이들이 당하는 가장 큰 불이익은 임금이 체불되거나 떼이는 경우다. 선의의 피해나 한국노동계의 관습을 몰라 빚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불법체류자라는 점을 고용주들이 악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과 근로수당을 주지 않는 사례도 빈번하다. 서울 노동연구소 등이 작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잔업수당을 못 받는 사람이 56.3%이고, 일주일 평균 13시간의 잔업을 한다고 응답,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렇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대부분이 대학 졸업자(54.9%), 고교 졸업자(39.1%)로 알려졌으며, 이들 중 86.1%가 관광비자로 입국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불법취업자’라는 문제가 부각됐다.
‘불법취업자’라는 점 때문에 이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강제노동이나 산재사고, 질병 등이 발생해도 국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다는 현실이다. 또 이들이 근로조건이 극히 열악한 영세 제조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산재발생은 구조적으로 예견된다는 점에서 악순환은 되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고용주가 이들의 예치금과 여권, 출국일정에 맞춘 비행기표 등을 보관함으로써 불이익과 착취를 가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사실상 ‘노예상태’를 조장하는 이 같은 부당 노동행위는 결국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결과다.
불법취업자이기에 산재 발생시(39.9%)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월급을 못 받는 경우(19.4%)와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한 경우(29.8%)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여권을 갖고 있는 경우(90.6%)가 대부분이어서 불이익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금 가장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합법적 신분보장’(34.4%)을 최우선으로 꼽았고, 그 다음이 임금인상(20.1%), 체류기간 연장(17.5%), 근로조건 개선(4.5%)순으로 희망했다.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는 92년 8월27일, 93년 7월11일 서울과 인천교구 산하에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설립하고 이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돕는 등 상당한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정평위의 자료집은 이 같은 교회내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대처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평가되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정평위는 △법적, 제도적인 제안 △선교 사목적 차원의 대응 등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법적, 제도적인 입장으로 정평위는 먼저 정부가 인력수입에 대한 정책방향을 명백히 설정하고 추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체류연장, 묵인이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정평위는 이들이 우리나라 산업계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의 노동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입국, 취업시키고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정평위는 최근 정부 간 협약을 체결한 대만의 사례 등을 들어 우리나라도 이런 측면에서 타국과의 협약으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공개화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평위는 선교 사목적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 의료보험 혜택 제공, 법률 전문가의 선도적 역할과 사정이 딱한 산재 사고시 치료비와 보상비를 대불키 위한 모금 및 기금마련에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 교회가 산재환자 발생시 간병팀 운영을 선교적 차원에서 할 것과 외국인을 위한 미사 장소, 한글교실을 운영할 방 및 자원봉사자를 본당 차원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독려하는 등 범교회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편 이 보고서를 작성했던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건씨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개선이 함께 병행되어야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산재사고, 임금체불 등의 문제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들의 문제이기에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영세기업 중심의 소위 3D직종의 근로환경 개선 등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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