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게 먹는다는 것은 먹을 것이 변변치 못했던 유대인들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꿈이요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간절하게 기다렸던 메시아 시대가 오면 모두가 풍성한 잔칫상에서 배부르게 먹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 55,1-3)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백성의 기대에 대한 일종의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빌론이라는 곳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들은 아주 혹심한 고생을 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의 일입니다. 그때 그들은 피눈물 나는 박해와 고통 속에서 비로소 자신들을 성찰했으며 하느님을 등지고 멀리했을 때 과연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었던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언자가 등장해서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풍성한 잔칫상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구약에서 묘사되는 잔치는 주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의 잔치를 예고해 줍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골고루 배부르게 먹었던 만나, 그리고 돈 없이 하늘에서 무상으로 내려주셨던 음식은 바로 예수님께서 베푸시게 될 잔치를 말하며 그리고 그 잔치는 천상의 잔치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빵의 기적도 마찬가집니다.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무엇을 주실 때는 항상 넉넉합니다. 결코 인색하거나 쩨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싼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는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아주 귀한 것이면서도 돈도 받지 않습니다. 그냥 주시는데 그것도 후하게 넘치도록 주십니다.
빵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단적인 예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을 풍성하게 주셔도 그 가치를 모르면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인 그 사람은 채권이 뭔지도 몰랐으며 그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 수천만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채권을 방 도배하는데 도배지로 다 써버렸다고 했습니다. 돈이 산더미처럼 있어도 쓸 줄을 모르면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집에 손님이 와서는 그 집의 어린애에게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선물 값으로 주었는데 차 한 잔을 마신다음 그 아기를 돌아보니까 돈을 입으로 물어뜯어서 죄 못쓰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돈을 아는 사람에게 돈이 가치가 있는 것이지 돈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돈은 휴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제가 왜 그런 말을 길게 하는고 하니 ‘성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성체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구원의 양식으로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먹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가 없으며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요한 6,22-59참조). 그러나 성체의 의미를 모르고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모른다면 불행하게도 성체는 아무 은혜도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국제 성체대회가 열렸을 때 교황님께서 미사 중에 성체를 높이 들으시자 백만의 신자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함께 따라온 개신교 신자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다 절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천주교 신자가 아, 그것은 저 밀떡 안에 계신 예수님께 절을 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개신교 신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저것이 만일 진짜 예수님이라면 자기 재산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을 듣고 천주교 신자의 눈이 번쩍 뜨였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잔칫상에 매일 초대받고 있습니다. 결코 그 앞에 나설 수도 없는 자격 없고 죄 많은 인생들이 아무런 돈 없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하느님은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잔칫상은 음식이 한가지면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풍성한 향연입니다. 왜냐하면 음식 자체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얻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이고 하느님을 먹으면 세상을 다 먹은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답답하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또 하느님께서 이처럼 큰 선물을 주시는데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헌금하지 못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은 특별히 목마른 자에게 주시며 뉘우치는 자에게 베푸시고 청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하느님의 풍성한 음식 안에서 우리는 진정 생명의 길을 걸어가도록 합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는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술과 젖을 사서 마셔라”(이사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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