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어느 날 밤에 꿈을 꾸는데 갑자기 그 얼마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나타나셔서는 매우 근심스런 표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꿈속이었지만 저는 순간적으로 ‘아! 외할머니께서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계시구나’하는 생각을 불쑥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연미사를 봉헌해 드릴까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고개를 흔드시고 아니라고 하시더니 사도신경을 한번만 바쳐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아주 의외였습니다.
사도신경!
저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사도신경을 한번이 아니라 열 번이고 바쳐드렸지만 왜 꿈속에서 할머니께선 그 기도를 요청하셨는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깊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으셨습니다. 3년 동안 가르친 보람이 있는지 궁금하셨으며 또한 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볼 때에 이제 그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준비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잡신들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 지역인 북쪽 지방으로 가셔서 제자들에게 점차적인 시도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분은 한 바퀴 돌려서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며 또한 예레미아나 예언자들 중의 한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제법 좋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주 맞대놓고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느닷없는 질문에 제자들은 멈칫했을 것이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따라다니긴 했지만 예수님이 누구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베드로만이 나서서 기특한 대답을 합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는 다 시원찮은데 그 대목에서만은 아주 백점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메시아)이시다’라는 믿음 위에 우리 신앙과 교회가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오셨으며 그리고 그것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라틴어에 ‘유디치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선서’라는 뜻입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신부가 될 사람은 서품 며칠 전에 자기 교구장이신 주교님 앞에 나가서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합니다. 그런데 그 유디치움의 내용은 다름 아닌 사도신경을 주교님 앞에서 낭독하는 것입니다. 즉 사제로서 사도신경의 믿음에서 일탈하지 않고 끝까지 그 진리위에 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바로 이 ‘사도신경’이라는 믿음의 고백 위에서 존재합니다. 신앙인이 서고 있는 밑자리도 사도신경이며 신부나 주교, 또는 교황이 서고 있는 자리도 사도신경입니다. 천주교는 한마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오늘의 성서구절을 굉장히 미워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결점이 많았지만 믿음 하나 때문에 교회의 반석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의미에서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기 공적에 의해 구원받지 않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성당에 안 나가도 죄는 짓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당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더 양심이 바르고 더 착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죄를 자주 짓는다 해도 구원은 믿지 않는 선인보다는 믿는 죄인 편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착한 것만 가지고 구원받는다면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는 누구입니까?
그분은 우리 생애에 계속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도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의 생활 안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과거가 있고 결점이 있으며 본성이 약하다는 것은 신앙인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누구시다라는 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믿으면 삶이 개선되고 선을 행하며 진리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 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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