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8,1-8)
루가 복음서는 주님의 재림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의 구원의 때임을 설명하는 이른바 종말론에 대한 예수의 첫 번째 가르침을 서술한 다음 두 가지 비유를 들면서 기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 하나는 오늘의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이고 곧 이어서 두 번째 비유가 이어진다(다음 대목참조).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는 표로 모욕과 고난, 끝내는 치욕의 죽음을 당해야 하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종국적인 구원을 받을 때에는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박해에 시달려야 하고 믿음을 저버릴까 하는 유혹을 이겨야 하는 어려운 처지를 극복해야 한다. 이 어려운 처지가 얼마나 오래 갈까, 얼마나 더 견디어야 하나(묵시 6,10)하는 울부짖음이 있을 것이다.
사실 사도교회 신자들은 이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주님의 재림을 목마르게 기다렸다. 처절한 처지에 처한 신자들을 지도하면서 사도들은 굴하지 말고 늘 기도하며 기뻐하고 감사할 것을 권고하였다(테살 전 5,17 테살 후 1,11 로마 1,10:12,12 에페 6,18). 왜냐하면 구원은 주님이 약속하신 바이고 반드시 그 때가 오겠기 때문이다(베드 후 3,12). 그러니 우리가 가져야 할 관심사는 회개하는 일이며(사도3, 19) 좌절하지 말고 기도하는 일이다. 주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느님의 나라가 빨리 실현되기를 기도해야 한다(루카 11,2).
오늘의 비유 이야기는 신자들 즉 뽑힌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고는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꼭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어 구원해 주실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좌절하지 말고 끈기 있게 기도하라는 교훈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관심도 없고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재판관이 있다. 그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요구하는 보잘 것 없는 과부는 재산관리에 있어서 억울한 입장에 있다. 물론 고약한 재판관이 일처리를 기피한다. 이와 같은 설정의 이야기는 ‘옛날에…있었다’라고 시작하는 옛 이야기 식으로 어디까지나 가정적인 설정이다. 그런데 그 과부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또 그 재판관이 왜 자기 임무를 유기했는지, 그 과부를 억울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러한 것들은 이 이야기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야기의 성질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약한 재판관도 끊임없이 성가시게 졸라대는 바람에 그 청을 들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자꾸만 찾아와서 못 견디게 굴 것이다”라고 한 재판관의 독백은 원문대로는 “눈 밑을 때리다”라는 말인데 이 용어는 사도 바오로가 견고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묘사하여 사용한 권투용어이다. 사도 바오로는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고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코린 전 9,26-27)라고 외쳤다. 여기서 성가시게 하는 과부의 요청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는 신앙생활의 집요한 노력으로 상징된다. 신앙생활의 난관은 하느님도 모르고 인정도 없이 이기주의적으로만 상대하는 재판관으로 비유되고 있다. 과부는 구약성서에서 사회적인 동정을 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가사처리, 자녀교육 등 고독하게 혼자서 고생하는 여인으로 되어 있고 예언자들과 과부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자들을 호되게 꾸짖고 있다(이사 1,23:10,2 욥 22,9:24,3:31,16 시편 94,6).
예수의 오늘의 비유는 이 과부상을 ‘선택된 백성’으로 비유하였고 그녀의 끈질긴 요청은 구원의 날을 기다리는 신자들의 기도로 비유하였다. 지금 어려운 사정에 있지만(사도시대의 박해받는 교회를 생각한다) 끝까지 버티고 기도하라는 교훈으로 훈시되다. 기도는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불의한 재판과도 끈질긴 요청에 굴복한다면 진실되고 의로운 하느님이 신자들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실 리가 없는 것이다. 재림의 날에 믿음 없는 세상이 될까하는 염려로 비유가 끝나는데 역시 끈질긴 기다림을 격려하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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