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발표 게재순
① 안중근의 가톨릭 신앙(노길명 교수)
② 안중근의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전쟁(조광 교수)
❸ 안중근의 동양평화론(홍순호 교수)
④ 안중근의 의거와 교회의 반응(최석우 신부)
안중근의 국권회복을 위한 전략이 ‘독립전쟁 전략’(국외 의병활동 포함)이라면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은 ‘동양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은 안의사가 국권회복 운동에 종사하면서 세운 그의 지론으로서 그의 운동에 있어서 기초적 배경이 된 사상체계였다. 미완성 원고인 ‘동양평화론’은 1979년 9월에 발견된 것이 현재 남아있는데 이 빈약한 자료에 의해 그의 전체 사상체계를 추적하기란 부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자료와 공판 과정에서의 그의 진술과 옥중 자서전 등 기타 전기를 통해서 그의 주장을 종합하여 보면 그가 주장한 동양평화론의 개략적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원래 안중근이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것은 ‘동양의 대세의 관계와 평화정략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것으로서 미완성의 글 속에서도 그가 천주교 신앙에 입각한 이상주의자이면서도 행동적 국권회복 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가진 ‘동양평화 사상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란 주체적인 가톨릭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동양 대세의 움직임을 하늘의 뜻에 두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동양평화론에서의 ‘동양평화’란 애국계몽활동(신교육 구국운동, 민권운동, 국채보상운동)에서 시작하여 독립전쟁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국외 의병활동(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함으로써 일본의 자각 반성을 촉구하며 한·청·일 3국이 합심단결하면 동양평화가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안중근은 일왕이 노일전쟁 선전포고에서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전쟁을 벌였음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약하고, 을사조약 정미조약 체결로 한국의 국권을 박탈한 것은 일차적으로 동양평화의 파괴행위로 규정했다. 그리고 한국 식민지화를 추진한 이토 히로부미를 동양평화를 저해한 최대 원흉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제를 용서하고 일본과 화해하여 동양평화를 위해 동양 3국의 단결을 촉구한 것이다. 이것은 동양평화론 자체에 정의 사랑 평화의 구현을 위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안의사의 큰 뜻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의 사상 형성과정에서 동양평화 사상이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가를 고찰하면 애국계몽운동, 독립전쟁 전략, 국외 의병활동의 전개에서는 상호간의 모순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안중근은 투철한 천주교 신자로서 먼저 ‘사랑’으로 신교육 구국운동이나 민권운동에 참가하고, ‘정의’로서 독립전쟁 전략과 국외 의병활동을 전개하며, 관용으로 일본에서 동양평화 운동에 동참할 것을 충고하는 평화의 사상가였다. 그렇다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실제에 있어서나 논리적인 면에서나 전혀 모순됨이 없이 그의 이상주의적인 가톨릭 정신에 입각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안의사는 동양평화의 핵심적 위치를 한국으로 설정하였다. 그는 한국의 식민지화로 인하여 만주,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약소국들이 모두 일본이나 열강들의 침탈의 대상이 됨으로써 동양의 식민지화에 있어서 일종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것을 일찍부터 예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안중근은 일본이 간교한 외교로 한·만 침탈에 대한 열강으로부터의 묵시적 또는 명시적 양해를 받아내는 대신 미·일·영·프·러 등 열강의 동양제국 이권 획득 내지 식민지화를 일시적으로 인정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정책의 일차적 대상이 한국에 있었음을 그는 가장 잘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서술한 동양평화론을 통해 알 수 있다.
안의사는 사랑 정의 평화의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하여 해박한 역사감각과 국제법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견고하게 형성된 시점(1900년대 초부터 사형당할 때까지)에서, 당시의 역사적 현실과 동양평화를 주장한 동양평화론의 대강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안중근은 ‘자기의 시대는 약육강식 풍미의 시대로서 세계는 동서로 나눠져 지금(1909년)은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온다’는 시대개념을 정립하고 동양인종은 일치단결하여 서양세력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것을 첫째의 긴급한 과제로 설정했다.
만약 일본이 정책을 고치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에 대한 침략을 계속한다면 동양인들은 관민이 일체가 되어 스스로 서양과 결맹해서 일본의 침략을 막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안중근은 자신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한 것도 그가 전약을 배반하고 한국의 국권을 탈취하고 만주를 침략하여 동양평화를 영구히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해 의병전을 전개했고 여순에서 이를 밝힐 수 있는 자리를 얻고자 했다고 말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실현하고 일본이 자존하는 길은 한국의 국권회복과 만주와 청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버리는 것으로 보았다. 그 다음 한·청·일의 3국이 협력해서 서양침략을 방어하고 화합 속에서 진보하여 유럽과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함으로써 동양평화는 실현되고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주장했다.
안중근의 이러한 평화사상과 거사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양민족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평화론은 미완성 원고이기에 더욱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의 동양평화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독특한 ‘주체적 가톨릭관’을 인식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인식 없이는 그의 평화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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