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어나 양 팔이 없음을 육감으로 확인했을 때 그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지요”
약 9년 전, 천직으로 여기던 직장에서 양 팔을 잘리는 산재(産災)를 당하고 화단의 촉망받는 현대서예가로 변신한 석순기(37세·베드로·전주 중앙본당)씨. 석순기씨는 그동안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절망의 삶을 살기 싫어 서예가로 또 미술가로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병원에서 의식이 회복 됐을 때는 이미 양 팔과 두 발가락이 절단된 뒤였고 그래서 그는 “떨어져 나간 육체보다 남아있는 육체를 챙겨야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흐트러짐 없는 삶을 산 것도 그때 다짐한 나와의 약속이었다”고 강조했다.
석순기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정확히 의류제조 업체인 (주)서광에서 중견 직장인으로 근무하던 때인 84년 10월19일. 부하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전사고를 수리하다 고압선에 감전돼 주검과도 같은 악몽의 세월 속에 살아야 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
다행인지 석순기씨는 그때 이미 결혼을 해 1남1녀의 자녀를 거느린 어엿한 가장이었고 석순기씨가 희망을 꺾지 않고 서예가로 성공하는 데는 이들의 지극한 사랑이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창피해 손처럼 생긴 의수를 사용했다가 아무 쓸모도 없는 손모양의 의수를 벗어 던지고 편리하게 뭔가를 집을 수 있는 쇠꼬챙이 의수로 바꾸었다는 석순기씨.
“어느 땐가 막내 종인(10세)이가 그림을 그려 달라고 졸라 그림을 그렸던 게 그림에 대한 소질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죠. 그때부터 쇠꼬챙이 의수로 서예를 시작해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지요”
국립 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 활동하는 여태명 선생의 지도를 받아 정식 작가로서 입문하게 된 석순기씨는 그 후 전북 서예대전 입선과 특선을 거쳐 대한민국 서예대전 2회 입선을 비롯 서울 국제 현대서예전 동묵회전, 현대동인전에 출품하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펴오고 있다.
공고를 졸업하고 공대를 나오는 등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던 그는 “하려고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작가라는 평을 주위로부터 듣기에 이르렀다.
작가로서 크게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있는 석순기씨 자신도 “국내뿐 아니라 세계 미술사에 족적을 남길 대형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작가로서의 불타는 의지를 내비쳤다.
“내 손과 팔은 마음에 있습니다. 손은 단지 마음을 읊어내는 도구에 불과하지요”
석순기씨는 현재 8월19일부터 25일까지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열린 제4회 현대동인전에 4점의 작품을 출품했으며 오는 11월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는 조형서예협회 회원전에 출품할 작품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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