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발표 게재순
① 안중근의 가톨릭 신앙(노길명 교수)
② 안중근의 애국 계몽운동과 독립전쟁(조광 교수)
③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홍순호 교수)
❹ 안중근의 의거와 교회의 반응(최석우 신부)
문제의 제기
한국 민족은 한국의 자주와 독립을 빼앗은 일본인 이토(伊藤博文)를 살해한 사건을 의거로 부르고, 그 의거의 주인공인 안중근을 의사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 안중근은 천주교 신앙인이었으므로 그의 애국적 행위가 천주교의 신앙과 윤리면에서도 정당화 될 수 있느냐가 문제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건 당시 한국 천주교회는 그것을 살인죄로 단죄했다. 당시 프랑스 주교와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에서 그런 신자가 나온 것을 부끄러워했고, 심지어 그런 사실이 신문에 가능한한 보도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난 1979년 안중근 의사의 탄생 1백주년을 계기로 해서 그의 신앙과 조국애를 기리는 미사와 기념행사를 가지기 시작했다. 기념행사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닌 안중근의 복권이다. 왜냐하면 안중근의 의거는 아직 교회내에서 정당화되지 못한 채 현안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역사적 과제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교회는 이미 완전히 한국인의 교회가 된 만큼 더욱 그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자신의 변호
안중근의 의거에 그의 애국심과 더불어 신앙이 함께 작용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이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느님에게 감사했고 감옥에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법정에서 천주교인임을 고백했고 나아가서 그의 의거가 신앙의 견지에서도 정당했음을 변호했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 것을 정당행위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것이 인도에 어긋난 행위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또한 그것이 천주교의 가르침과 성서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니냐는 질문에 성서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나 남의 나라를 빼앗고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죄악이므로 그 죄악을 제거하려 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이 말은 죄가 죽은 자에게 먼저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이 죽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그를 죽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살해행위는 자연법상으로도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이다.
안중근은 그의 살해가 무엇보다도 정당한 전쟁 중의 정당방위였음을 강조했다.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위하여 이토를 죽였다.” 그래서 안중근은 그가 자객이 아니고 포로이기 때문에 일본법정은 그를 재판할 권리가 없고 마땅히 국제법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반응
당시 조선 교구장이던 뮈텔 주교는 결국 이토의 암살범이 천주교인으로 판명되자 크게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안중근 사건을 이렇게 논평했다. 이토가 살해된 것은 공적인 재난인데도 한국인들은 기뻐하며 환영하고 있다. 그것은 이토가 한국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했는데도 오히려 그를 일본 침략의 앞잡이로 오해한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이토가 살해된 것을 당연한 복수로 여기고 기뻐들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뮈텔 주교는 같은 이유에서 안중근이 마지막 성사를 받기 위해 신부의 파견을 간청했는데도 그 간청을 거절했다. 뮈텔 주교는 신부 파견의 전제조건으로 안중근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기를 요구했다. 즉 안중근이 이토를 오해하고 죽이게 된 것을 먼저 뉘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중근의 영세신부인 빌렘(한국명: 홍석구)신부는 주교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여순으로 가서 안중근 토마에게 마지막 서사를 주었다. 그 결과 그는 주교로부터 불복종의 이유로 성무 집행 정지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빌렘 신부는 로마에 상소했고, 로마는 주교가 도를 지나쳤다고 하며 빌렘 신부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뮈텔 주교는 사형수에게 순 종교적인 성사 집전까지 거부함으로써 종교와 정치를 혼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에 빌렘 신부는 종교와 정치를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에게 주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사를 줄 수 있었다. 나아가서 뮈텔 주교처럼 안중근의 이토 살해의 윤리성을 단죄하면서도 그 정치적 의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정치적 의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안중근은 그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등한시되고 있는 한국문제에 대해 열강의 주의를 끌게 하려 했을 뿐이다.”
해결의 길
안중근의 변론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소위 독립전쟁을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이론이 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병운동이 정당한 전쟁이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론에 의하면 합법적인 위정자에 의하여 전쟁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그러한 조건의 타당성이 문제시되면서 일찍이 알제리에서 있었던 해방을 위한 게릴라전까지 정당한 전쟁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병운동도 해방전쟁의 일환으로 당연히 정당한 전쟁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애 내지 애국심은 그 윤리적 근거를 효성(孝誠)에 두고 있다. 그런데 조국에 대한 효성과 하느님에 대한 효성은 뿌리에 대한 효성이라는 점에서 상통하는 덕행이다. 즉 후자는 창조의 근원에 대한 효성이요, 전자는 역사와 문화의 뿌리에 대한 효성이다.
안중근이 누구보다도 의거를 하는데 용감했고 또 죽음 앞에서도 더없이 태연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가 사후의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효성으로 받아들이고 굳게 믿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안중근의 올바른 민족주의이다. 그는 한국의 평화를 이웃나라의 평화와 함께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독립만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었고 마침내는 그의 생명까지 바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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